그리운 문방구의 추억

입력 2007-05-10 16:56:22

그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아이들의 백화점이었다. 주머니에 50원 짜리라도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간혹 1천 원 짜리가 생기는 날이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는 했다. 학기 초가 되면 동아전과, 표준전과를 사려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미술이나 실과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들도 알아서 항상 준비해놓고 있었다.

철이 들어 학교 선생님이 문방구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물품을 미리 이야기 해놓는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문방구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교과과정을 훤히 내다보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찰흙이 있었고, 석고가 있었고, 함석이 있었고, 먹이며 벼루도 있었다. 간식거리는 왜 그리 많았는지. 여름이면 이름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쥬스를 얼려서 만든 빙과류가 있었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달고나가 인기였다. 단연 인기는 뽑기류. 50원이면 한 번 뽑을 수 있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뽑기는 매번 '꽝' 뿐이었고, 행여 옆 반에 누군가 1등을 뽑았다면 하루 종일 뉴스거리가 됐다.

대구 북구 모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찾았다. 한 때 4천 명을 헤아리던 학생은 이제 10분의 1로 줄었다. 학교 앞 골목길에 진을 치다시피 늘어섰던 예닐곱 곳의 문방구도 이제는 한 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공장지대 옆에 있지만 한 때 도심 학교였던 이곳은 이제 성서, 시지, 칠곡 등 부도심권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학년당 학급수가 10개가 넘었고,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것도 교실이 모자라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는데, 이제는 학년당 2, 3개반이 고작이고 학생수도 30명 남짓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학교 앞 문방구도 하나 둘 떠나고, 빈 자리를 식당이며 철물점, 공구재료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올해로 이 곳에서 문방구를 지킨 지 18년이 됐다는 주인 할머니. "예전에는 돈 못 벌었다고 말 못해요.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운동장 먼지가 자욱해서 얼굴도 안보일 정도였다니까." 먼 곳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표정에 쓸쓸함이 깃들지만 그것도 잠시. 오후 1시쯤, 오전 수업을 마친 1, 2학년생들이 줄줄이 문방구로 찾아들었다. 2평도 채 안되는 문방구 앞 가판대에 놓인 갖가지 주전부리를 찾아나선 것.

세월이 흘렀지만 문방구 '불량식품'은 그대로였다.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볼 수 없으니 '불량식품'이라고 억울한 누명을 씌울 뿐 실제 해로운 식품은 아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우유곽 모양 용기에 얼린 쥬스를 담은 '빙빙쿨'이 단연 인기란다. 값은 200원. 아울러 심심풀이 미니복권, 캐릭터왕국, 나루토 등 '뽑기' 제품도 당당히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한 번 뽑을 때마다 100원을 내면 되는데, 아이들마다 한 두번씩 해보고 '꽝'이 나오면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선다.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수십명의 '악동'들이 문방구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실제 주인 할머니 손에 남은 돈은 1만 원이 채 안됐다. 뒷켠에 앉아있던 주인 할아버지는 "전과나 문제집 같은 교재를 팔아야 돈이 되는데, 이제는 아무도 문방구에서 그런 걸 사지 않는다."며 "심지어 알림장이며 공책도 전부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구입하기 때문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 수 있는 거라고는 아이들 주전부리가 고작."라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6년 동안 방학을 빼고는 매일 같이 문방구를 드나들던 단골 손님들이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돼 종종 찾아온다고 했다.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얼굴은 어른이 돼도 알아보겠더라구요. 반갑다며 찾아오는 게 고마워서 그만두지도 못해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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