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선인장

입력 2007-05-10 07:45:49

▲ 김정호(수필가)
▲ 김정호(수필가)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 우리 집까지 왔는지 분명치는 않다. 호감도의 순서에서 몇 분(盆)의 동양란에 밀려 가족들 시야에서 벗어나고 말았으니 자연스레 물주기도 소홀해진 선인장이 있었다.

볼품없이 뒤틀리고 일그러지고 정말이지 살 것 같지 않는 선인장을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하는 심정으로 물을 철철 넘치게 한번 준 적이 있다. 소외되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선인장에게 우연히 눈길을 주다 하마터면 큰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렇게 변색되어 잘 보이지도 않았던 선인장이 짙은 녹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여느 집에서나 한 번쯤은 키워 보았을 성싶은 둥근 머리가 짧은 기둥처럼 올라간 순박한 선인장. 뒤틀렸던 부분이 거의 다 원형 본래 모습으로 회복이 된 시간을 되짚어보니 열흘 정도, 깜짝 놀랐다.

철철 넘치게 준 물 모두를 제 몸에 꼭꼭 채운 모양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수없이 사과했다.

선인장의 강인한 생명력과 절제력, 허리띠를 졸라매고 엎어질 듯 자빠질 듯 초긴축을 감행하다 절호의 기회에 놀라운 흡입력으로 재생의 환희를 선사하는 선인장. 보는 나로 하여금 감탄과 경이로움과 함께 반성과 여지를 자아냈다.

사생결단으로 자신을 지키는 선인장과는 달리 쉽게 타협을 포기하고 더러는 배척도 스스럼없이 하는 나를 보며 '시시하다.' 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귀 기울여 내 내면의 양심도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사람보다 나아보이는 선인장의 자태,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신선의 모습으로 혼탁한 세상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면서도 도도함과 수용함을 아우르는 소리 없는 외침. 나약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을 질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선인장을 천시했을까. 또다시 무관심할 수 있을까. 다시는 이 성스러운 생명력과 무한한 자기관리에 부끄럽지 않도록 보듬고 다독이는 데 애쓰리라. 평소 독침같이 보였던 가시쯤이야 나의 허물에 비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인내를 가르쳐 주었으면서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경제 철학까지 숙지하게 해준 선인장을 늘 옆에 두리라.

하찮게 여겨 쓰레기 더미에 묻어버릴 뻔했던 '너' 대신 '나'의 '오만불손'을 묻으며 겸허하게 자연의 한 부분인 널 스승으로 맞이한다. 누가 주었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는 걸 보면 못 이기는 듯 받아 오지나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 못난 衆生이….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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