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는 길)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입력 2007-05-08 07:28:49

오후 5시에 보길도로 가는 카페리호를 탔다. 혹시나 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바다 위를 배를 타고 가니 오히려 감회가 새롭다. 배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정겹다. 양식장 부표가 빽빽하게 뒤덮인 보길도로 가는 바다. 정말 완도의 바다에는 노는 '땅'이라곤 없다. "보길도, 노화도, 소안도 이 세 섬은 사방이 다 전복 양식장이라고 보면 돼요. 전국 전복의 70%가 완도산이라니께요." 함께 배를 타고 가던 보길도 주민의 말씀이다. 전복에서부터 김, 미역, 다시마, 톳까지. 착착 구획된 양식 어장들의 질서정연함이 잘 갈아놓은 논밭 못지않다. 이곳에서는 '짠물'로도 '농사'를 짓는다. 야들야들한 해조류며 오독오독 씹히는 전복이 저 바닷물 속에서 자란다. 논밭처럼 펼쳐진 그 위로 빗방울이 적신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린다. 어둠 속에서 카페리호는 섬 사이를 스치듯이 지나간다. 몇 개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지만 어둠 때문에 풍경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보길도에 도착했다. 민박집이 예약된 예송리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지프 화물칸에 몸을 구겨 넣어 타고 가는 재미도 특별하다. 민박집은 한옥을 예쁘게 개조한 아담한 집이다. 병어회를 겸해 저녁 식사를 하고 밤새도록 격자봉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설쳤다.

보길도의 아침이 밝았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여전하다.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온 세상이 백색이었다. 밤새도록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진다. 보길도에서 만난 폭설. 민박집 앞에는 하얀 눈 속에 붉은 동백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때 이른 동백꽃의 개화가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절경을 만들어 낸 셈이다. 지난밤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민박집 뒤에는 격자산이 엄숙하게 우뚝 서 있고 앞에는 수많은 섬을 거느린 바다가 가로로 누워 있었다. 격자산에서 쏟아지는 눈발이 바다를 온통 적시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한 대목이 읊조려졌다. '앞에는 만경유리, 뒤에는 천첩옥산.' 정말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간밤의 눈 갠 後후에 景경物물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는 萬만頃경琉류璃리 뒤희는 千쳔疊텹玉옥山산.

至?悤(지국총) 至?悤(지국총) 於思臥(어사와)

仙션界계ㄴ가 彿불界계ㄴ가, 人인間간이 아니로다.

(윤선도, '어부사시사' 부분)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 이이첨 일당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이듬해 경원에 유배당했다. 1628년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 왕자사부가 되어 봉림대군(효종)을 가르쳤다. 그 후 공조, 형조, 호조정랑 등을 거쳐 가복사첨정, 한성부서윤을 역임했으며 그 뒤 강석기의 모함으로 성산현감으로 좌천되었고 이듬해는 그 자리마저 삭직되었다. 또 병자호란 때에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 고산은 수차에 걸친 유배로 인해 은둔생활을 결심하고 보길도에 들어와 별서 정원을 경영하고 호화스러운 생활 속에서 일생을 마쳤다.

생선찌개로 아침을 먹고 예송리 바닷가로 나갔다. 바람과 눈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럼 그냥 이 섬에서 살지 뭐. 눈은 어느 정도 그쳤으나 하늘은 여전히 무거웠다. 점점이 떠 있는 수많은 섬들. 그리고 작은 섬처럼 정박된 크고 작은 배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해변을 둘러싼 방풍림도 제법이었다. 거기서 가장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만난다. 보길도 예송리에서 만난 바다 위로 내리비치는 햇살.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마음 속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아무리 눈이 길을 막아도 여기까지 와서 윤선도를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제 세연정(洗然亭)으로 갈 때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1651년(효종 2년) 고산(孤山) 윤선도가 지은 시조이다. 보길도(甫吉島)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지은 것으로, '고산유고( 孤山遺稿)'에 실려 전한다. 춘하추동에 따라 각 10수씩, 총 40수로 되어 있고, 작품마다 여음(餘音)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여음은 출범에서 귀선까지의 과정을 조리정연하게 보여준다. 즉, 먼저 배를 띄우고, 닻을 들고, 돛을 달아놓고 노를 저으며 노래를 읊는다. 그러다가 돛을 내리고 배를 세우고, 배를 매어 놓고, 닻을 내리고, 배를 뭍으로 붙여놓는 것으로 여음이 짜여 있다. '어부사시사'는 자연을 관조하고 그것을 완상하며 즐기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어부생활을 읊은 것이다. 이들 작품이 표방하는 어부는 고기잡이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진짜 어부가 아니라 강호자연을 즐기는 사대부이다. 따라서 어부생활을 통한 생계유지의 양상 혹은 고통, 고된 삶 등은 작품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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