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농장] ⑭포항 성동쌀연구회

입력 2007-05-02 07:41:42

▲ 포항 구룡포읍 성동리 성동쌀 연구회원들이 못자리에서 1㎝ 남짓 자란 볏모를 살펴보고 있다. 이 못자리에는 벌써부터 우렁이가 기어다니며 모판 사이에 난 잡초를 뜯어먹고 있다. 논밭 어귀에는 흔한 비료포대나 농약병 하나 없었다.
▲ 포항 구룡포읍 성동리 성동쌀 연구회원들이 못자리에서 1㎝ 남짓 자란 볏모를 살펴보고 있다. 이 못자리에는 벌써부터 우렁이가 기어다니며 모판 사이에 난 잡초를 뜯어먹고 있다. 논밭 어귀에는 흔한 비료포대나 농약병 하나 없었다.
▲ 성동3리 회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우렁이 양식장. 이곳에서 키운 우렁이는 나락논에 들어가 제초제와 살충제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연구회 황보 은(왼쪽) 회장과 황보 병권 총무가 우렁이를 살펴보고 있다.
▲ 성동3리 회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우렁이 양식장. 이곳에서 키운 우렁이는 나락논에 들어가 제초제와 살충제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연구회 황보 은(왼쪽) 회장과 황보 병권 총무가 우렁이를 살펴보고 있다.

31번 국도를 타고 구룡포에서 감포쪽으로 7㎞가량 가다 다시 포항 동해면 쪽으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잡은 포항 구룡포읍 성동리. '성동'이라는 지명보다 '메뚜기 마을'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황보(黃甫) 씨 집성촌으로, 40여 가구 가운데 10여 호쯤 조 씨 등 타성받이들이 있지만 대부분 황보 씨 집안과 인척 간이어서 한 집안이 모여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대대로 살며 3리 이장을 맡고 있던 황보 정남(63·현 구룡포농협장) 씨는 1990년대 초반 어느 날 식사를 하다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예전 먹던 쌀밥은 솥뚜껑을 열면 구수한 냄새가 났는데 왜 요즘 쌀은 모양만 좋지 예전 같은 냄새와 맛이 나지 않을까?"

정남 씨의 이 같은 의문이 오늘날의 메뚜기 마을을 만드는 출발점이 됐다.

성동리 토질은 토질 산성화를 막는 제오라이트 성분이 아주 많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성동쌀은 한 금을 더 쳐 줄 정도로 인정받았는데, 화학비료 농법이 보편화하면서 이곳 쌀도 '그렇고 그런' 평범한 쌀로 전락했던 것.

마침내 정남 씨는 1993년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논 농사를 지어보자고 결심했다. 현 이장인 병권 씨 등 7명이 따라 나섰다. 성동쌀 연구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엔 참 우스웠습니다. 화학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는 이웃집 벼는 푸르다못해 시커멓게 크는데 우리 농작물은 옮겨심은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착근조차 못하고 노랗게 시들시들 말라들어가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이를 보다 못해 서너 달 버티다 비료를 쓰는 바람에 허사가 된 경우도 많았죠."

정남 씨와 병권 씨는 옛날을 이렇게 돌아봤다.

하지만 첫해 수확철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무농약 쌀이 서울의 한 제약(건강식품)회사에 일반 쌀보다 30%가량 비싼 값에 팔린 것.

무농약 농법은 한두 농민의 뜻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이웃 논밭에서 날아오거나 농수로로 내려오는 농업용수에 섞여 있는 농약은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 그런데 마을 전체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당초 성동3리 8농가에서 시작된 무농약 농법은 15년이 지난 현재 42가구로 늘었고, 마을 전체가 무농약 인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기농 인정을 받은 농가도 절반가량이나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 무농약 쌀 농사를 지으면서 시작했던 오리농법은 이곳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우렁이 농법이 대신하고 있다. 오리가 잡초를 뜯어먹고 병충해를 퇴치하는 효과는 크지만 오리 사료에 항생제가 들어 있어 '만에 하나' 우려되는 약품 오염 가능성을 의식한 탓이다. 그래서 순전히 잡초와 물만 먹고 자라는 우렁이 농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밭작물의 대표격인 양파와 토마토도 같은 농법으로 농사짓고 있다.

가장 큰 수확은 농업으로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았다는 것. 조두식(69) 씨는 "땅심이 좋으면 농작물이 병충해에 강해지고 생산량도 이내 화학비료를 쓸 때 정도로 회복되더라."며 "힘은 들지만 농비 적게 들고 수확품은 제값을 받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시중 매장에서 파는 성동쌀은 20㎏들이 한 포에 6만 원으로 일반 쌀의 3만 8천 원에 비해 훨씬 비싸다.

친환경 유기농법 선구자인 정남 씨, 태권 씨, 은 씨가 입모아 한 말은 이렇다.

"양(量)보다는 질(質)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질을 따지다 보니 양은 저절로 따라옵디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