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또 하나의 화두

입력 2007-05-02 07:53:03

▲ 전경옥 논설위원
▲ 전경옥 논설위원

楚(초)나라 일개 농부의 자식으로서 漢(한)나라를 세운 劉邦(유방·BC 256~195)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측근도 서슴없이 제거했던 냉혹한 황제였다. 그러나 그런 유방도 부모에겐 지극한 효자였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들을 따라 長安(장안)에 온 유방의 아버지는 태상황으로서 꿈같은 궁궐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욕심없고 순박한 농부였던 그에겐 온갖 산해진미도, 아름다운 궁녀들로 가득한 궁궐생활도 즐겁지가 않았다. 오로지 떠나온 고향산천과 친구들이 그리울 뿐이었다.

향수병에 걸린 아버지를 걱정하던 유방은 생각 끝에 장안에 고향 沛縣(패현)의 풍읍을 그대로 재현할 것을 명령했다. 마을이 완성되자 풍읍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 각자의 집에서 살게 했고, 심지어 닭·개·돼지 등 가축들도 옮겨왔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 마을을 본 유태공은 크게 기뻐하며 그 즉시 친구들을 찾아가 술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게 가장 큰 효도임을 보여주는 고사다.

느닷없는 재벌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 사건으로 나라 안이 시끌시끌하다. 미국 명문대 재학생인 아들이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은 데서 비롯됐다. 쇠파이프·전기충격기 동원설 등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밖에서 얻어맞은 걸 제 스스로 해결 못해 아버지에게 일러바친 20대 아들, "감히 내 아들을" 분기탱천하여 혼내주려고 달려가는 아버지. 아무리 뜨거운 父情(부정) 탓이거니, 이해하려 해도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다. 재벌에게 그 아들이 금지옥엽이라면 그 유흥업소 종업원들 역시 누군가에겐 귀한 아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와는 거리 먼 재벌의 과잉 자식 사랑도 문제이고, 아버지를 한순간에 우습게 만들어버린 아들도 큰 불효를 저질렀다.

5월, '가정의 달'이다. 얇은 주머니가 더 얇아지는 달이지만 그래도 주머니를 들여다보며 작은 선물이나마 고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시인이자 문학수첩 대표인 김종철 씨가 최근 '아들과 엄마가 함께 떠나는 온천여행'에 써달라고 5천만 원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생전에 어머니 모시고 단둘이 여행 못 간 게 한이 됩니다. 여러분도 늦기 전에…."자식 사랑, 부모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 팍팍한 이 세태에 던져진 또 하나의 話頭(화두)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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