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두번째 시집 낸 유홍준 시인

입력 2006-11-11 16:31:37

'야수'를 만났다.

시인 유홍준(44). 두 번째 시집 '나는, 웃는다'(창비 펴냄)가 대구 서점에 깔린 이튿날인 지난 7일 한 선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번득이는 눈빛, 흉터투성이의 거친 손, 투박한 말투…. 흡사 들판에 놓여 있는 듯했다.

만나자 "뭐하러 무지랭이를 만날라꼬"라고 뱉는다. 그는 현재 진주의 3교대 종이공장의 제지공이다.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간다/문명에서-문맹으로/….'('문맹')

고등학교도 겨우 나왔다. 시쳇말로 '문제 학생'. 그러나 지난 98년 '시와반시'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고,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을 내자 문단에선 "물건이 하나 나왔다."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력이 '화려'하다. 86년에는 대구 평리동에서 과일행상도 했다. "늘 퍼줬는데, 남는 게 있어야죠." 영양의 산판에서 막노동했고, 하천 제방공사며, 도로공사, 농약치기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막노동, 육체노동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시집의 현란한 시어와 상상을 초월하는 은유, 채찍질하는 듯한 영혼의 울림은 그의 실생활과 썩 오버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 학생은 고교때 이미 대학노트 2권의 습작을 썼다. 소설도 쓰고, 시도 썼다. 벼 벤 논바닥에 누워 '문학사상'이나 '민음총서' 등을 읽는 것이 낙이었다. 그때 시의 아우라를 처음 느꼈다고 했다.

"제 안에는 불이 많거든요."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컸다.

'…상자마다 크고 검붉은 아버지의 포도를 따서 담는다. 한 상자 또 한 상자 아버지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담아 싣고 시장으로 내달려간다….'('포도나무 아버지') '…/미친 미친 개복숭아나무 아래 젊어 죽은 내 아버지의 두개골 파묻혀 있다/해골 해골 개복숭아나무 아래 해골….'('이장(移葬)')

그는 흉터가 많다. 손에도 공장에서 '팔이 덜렁덜렁' 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다. '뚜껑 중의 뚜껑,/ 한 인간을 잠그고 있는 흉터는/ 아무도 열지 못한다'('그의 흉터'에서).

그러나 더 아픈 것은 삶이고 영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아랫배가 홀쪽한 어머니/배암으로 우시네 두꺼비로 우시네/….'('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 '이 책이 없었다면, 벌레 잡는 이 책이 없었다면 미사여구에 밑줄 긋는 저 독자놈의 뒤통수를 갈겨주지 못했을 것이다'('벌레 잡는 책').

"저의 시는 빨갛습니다. 천성이 상놈에 싸움꾼이라서 그렇죠. 아예 작정을 하고 삽니다." 자연스러움은 불편하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시가 되고 싶지만, 아직 그는 뜨겁다.

'…/나에겐 직방으로 듣는 약이 필요하다/그렇다 얼마나 간절히 직방을 원했던지/오늘 낮에 나는 하마터면 자동차 핸들을 꺾지 않아/직방으로 절벽에 떨어져 죽을 뻔했다/직방으로 골(骨)로 갈 뻔했다/….'('직방')

"시(詩)요? 그냥 낚아챕니다. 눈앞에 왔다갔다 하는 그놈을 바로 확…."

상처 깊은 그 팔이 허공을 가르는데, 흡사 '들개'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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