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범국민'? 천만의 말씀

입력 2006-05-15 11:43:46

汎(범).

'두루 널리, 빠짐없이, 모두'라는 뜻의 한자(漢字)다. '국민적으로…'하기보다 앞에다 '범'자를 붙여 '범국민적으로…'라고 하면 '보다 많은' 국민 '모든'국민이, '빠짐없이' '두루 널리'참여해서 '…하다'는 의미가 된다. 절대 다수 국민의 뜻과 생각과 행동이 뭉쳐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힘을 실을 때 붙이는 접두어인 셈이다.

따라서 범자는 어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두루 널리 빠짐없이 참여하고 뜻을 같이했을 때만 붙여 써야 옳다. 월드컵 응원 같은 게 그런 경우다. 그렇게 보면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대가 '범국민 대책위원회'(범대위)란 이름을 내건 것은 '범'자를 잘못 갖다 붙인 경우다. 절대 다수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지 못한 폭력적 시위에 '범국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국민'이란 이름을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보는 이념 선동 정치의 낡은 산물이다. '국민'이란 낱말은 위선적인 정치꾼일수록, 거짓술수에 능한 선동적인 정치꾼일수록 즐겨 들먹거리는 단어다.

한 줌도 안 되는 추종세력을 몰고다니며 '범'자를 써먹는 대중 선동 수법도 그런 낡은 정치꾼이 우려먹던 술수다. 우리는 과거에 그런 '국민'과 '범'이란 글자로 재미 봤던 선동적 정치 지도자를 기억하고 있다.

평택 시위대 속의 한총련도 그런 정치인 시절에 뿌리를 넓힌 세력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들의 모태요 산실인 대학에서조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서울대, 경북대 등 주요 대학들이 줄줄이 탈퇴를 선언하는 마당에 평택 한총련 시위떼가 '범대학생' 조직이라 말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 시위 가담자 역시 그들이 죽봉 휘두를 때 일터에서 열심히 땀흘리고 있었던 한국노총 노동자들을 계산하면 '범노동자'라 말할 수 없다. 평택 시위대에 평택 시민이 빠지고, 81%의 국민이 폭력적 시위를 반대한 평택 시위대는 그래서 범국민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될 한낱 시위대일 뿐인 것이다.

어제도 범국민들은 경찰의 안경과 안전모를 벗겨버리는 시위대의 모습을 인터넷 현장 사진으로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을 가진다. 왜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깊게 눌러 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까. 최루탄도 황사도 없는 논바닥에서 왜 마스크가 필요했을까.

민주사회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출과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마땅히 허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장이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식과 절차에 의한 정당한 주장이라면 당당할수록 좋다. 떳떳한 견해일수록, 고개를 들고 의연한 얼굴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월드컵 응원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했을 때 누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던가. 사람이란 떳떳하지 못할 때, 마지못해 끌려나와 따라하는 시늉을 해야할 때, 그 행동이 나의 본심이 아니고 나의 얼굴을 걸고 하는 의로운 행동이 아닐 때는 얼굴을 가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얼굴 가린 소수가 공권력과 군대의 카리스마까지 무너뜨리고 난데없이 평택에 광주항쟁 얘기가 나오는 비틀린 사회에 경제적 안정이나 평화와 공존이란 높은 가치가 존립할 수 없다. 시위대가 마스크 쓰고 소란스러웠던 날 한국인의 25%가 '스스로 불안하게 살고 있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 정권 3년에 국가 부채 114조가 늘었고 개인 파산자가 4만 명. 1년 새 3.2배나 늘어났다는 암울한 소식도 나왔다. 정작 범국민적으로 손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따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붉은 머리띠, 마스크부대의 죽봉 폭력 시위는 그칠 날이 없다. 여성 총리가 물에 물 탄 듯한 성명서만 읽고 있어서 더 그런가. '국민' 팔고 '범'자 함부로 갖다 붙이는 선동적 폭력 투쟁은 이제 끝장내자. 더 이상 거짓 술수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민심 조정은 통하지 않는 세상을 열자. 어둠 속의 세력은 21세기 한국민이 6'25남침 시절 적당히 선동하면 좌우로 갈라져 싸우던 무지한 백성이 아님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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