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대학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대학들의 발표는 올해도 어김없이 쏟아진다. 예컨대 서울대 수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수학 성취도 평가를 실시했더니 자연계열 559명 가운데 24%인 134명이 기준 점수에 미달했다는 발표가 며칠 전에 나왔다. 수능시험에서는 대부분 1, 2등급을 받은 학생들이지만 수능시험보다 약간 어렵게 출제했더니 '지진 합격생'으로 분류돼 기초수학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나 조사를 하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몇 년째 비슷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어느 대학은 올해를 '기초교육 육성의 해'로 정하고 신입생들에게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을 새로 가르칠 예정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이 정도는 눈 딱 감고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입시제도에 아주 특이한 '교차지원'의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다. 교차지원이란 인문계열이든 자연계열이든 고교 때 배운 과정에 관계없이 특정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최근 한 입시기관의 조사를 보면 인문계 수험생의 이공계 지원을 허용한 4개 대학의 공대 합격자 177명을 분석한 결과 120명이 자연계 수리 과정과 과학탐구를 배우지 않은 인문계열 수험생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쉽게 말하면 미분·적분을 모른 채 대학수학을 공부하고, 중학생 수준의 물리·화학 실력으로 이학을 배워야 하는 대학생이다. 의대에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대학도 있다. 중학교 때 생물을 싫어해서 인문계를 선택한 학생이라도 안정된 장래를 위해서는 의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셈이다.
교육부는 교차지원을 허용한 대학에 동일계 가산점을 통해 억제하라고 권유하지만, 골치 아픈 자연계열 공부를 하지 않고도 자연계열 수험생보다 더 쉽게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수험생들이 외면할 턱이 없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런 식의 왜곡된 대학입시를 경험한 학생들이 대학 공부를 마친 뒤 과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될 수 있느냐이다. 기초·전공과목조차 홀대하는 제도 하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과연 지식인의 필수 요소인 교양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뻔한 일이다. 이래서는 교양은커녕 전공에 대한 이해조차 부실한 '테크네'를 양산할 뿐이다.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는 2002년 발간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대학에서 갖춰야 할 교양으로 논리를 세우는 능력, 계획을 세우는 능력,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꼽고 있다. 여기서 논리를 세우는 능력이란 잘못된 논리를 간파하는 능력과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 즉 논리력과 표현력이 포함된다. 계획을 세우는 능력은 계획을 수행하는 능력과, 이를 위해 다른 사람을 조직하는 능력까지 아우른다.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란 정보를 평가하고 이를 활용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제대로다.
이 정도의 교양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대학이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그럴 만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국가의 관리 하에 학생들의 수준을 향상시키도록 설정한 초·중등 교육 시스템이 교육 수준을 효과적으로 저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하지만 가정에서라도 교양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노릇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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