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병 확산 '온 산이 소나무 무덤'

입력 2005-10-28 11:12:26

소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재선충병이 백두대간을 뒤덮고 있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생한 뒤 청도, 칠곡, 포항, 경주, 구미, 안동 등을 거쳐 이달에는 강원도 강릉까지 확산됐다. 산림청은 24일 소나무재선충병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전국 소나무에 대해 벌채, 유통을 금지하는 소나무 이동금지령을 내렸고, 지방자치단체들은 방제에 비상이 걸렸다. 재선충병은 이제 국민 모두가 감시해야 할 중요한 병이 된 셈이다.

◆온 산이 소나무 무덤

26일 오후 구미시 동량1동 속칭 밤실마을 뒷산. 경사 45도 산등성이에 '재선충 방제작업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은 가운데 4명의 인부들이 피해목 제거작업에 열중이다. 재선충병에 감염돼 벌겋게 말라죽은 소나무를 전동톱으로 베어 내는 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고 있었다. 직경 30cm 정도로 수령이 40~50년이 돼 보이는 쭉쭉 곧은 소나무가 여지없이 쓰러진 후 1m 길이로 토막났다.

이 일대 야산에는 훈증처리한 소나무 무더기가 여기저기에 즐비하다. 줄잡아 100여 개는 족히 된다. 한때는 솔 향기가 가득했을 산자락이 거대한 소나무 무덤으로 변했다.

영천시 대창면 소재지를 지나 사리와 경산시 진량읍 다문리의 경계지점까지는 빽빽한 소나무 숲과 적당히 어우러진 떡갈나무, 니기다소나무, 잣나무 군락으로 우거져 있다. 그러나 사리로 접어드는 길목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이곳도 재선충병 발생지역이다.

영천시 산림과 최동열 씨는 "지난 8월27일 재선충병이 발견된 지역으로 감염목과 고사목 151그루를 모두 소각한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 권오향(80) 씨는 십 수 년 전 솔잎혹파리가 창궐할 때도 끄떡없던 마을 소나무가 이번 재선충 바람에 맥없이 스러지고 있다며 혀를 찼다. 지난 6월말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발견되면서 산골 곳곳에 소나무 더미가 쌓여있다.

용산 혹은 뱀산이라고 불리는 포항시 기계면 내단1리 뒷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 개통된 포항~대구간 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도 보이는 흉한 민둥산이다. 주민 이종수(63) 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봄 사이 마을 수호신처럼 여기던 수십년~수백년 된 소나무가 베어질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허술한 방제현장

지난 8, 9월 6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 경산 진량읍 다문리 산2번지. 영천 대창면과 불과 몇 백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조그만 야산으로 조사결과 감염목은 6그루지만 고사목은 307그루, 우려목은 450그루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 곳은 사업비 문제로 아직 제대로 조치가 되지 않고 있다. 재선충 피해목 3그루만 그루터기에 청색 테이프가 감겨있고 소나무는 잘려진 채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려목들 중 몇그루에는 붉은색 테이프만 감겨있을 뿐이었다. 경산시 산림녹지과 이기대 산림보호담당은 "고사목 때문에 재선충병이 확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부족으로 이 일대 소나무에 대해 벌목과 훈증, 소각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생지역 바로 앞에 1만여 평 규모의 연못(한재지)이 가로막아 차단벽 구실을 함으로써 재선충의 이동을 더디게 하고 있는 듯했다.

영천시 대창면 근처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 눈에 관찰목과 고사목 등 일대 수백 그루가 감염된 것처럼 보였지만 방치되고 있었다. 예산과 인력부족이 그 이유다. 포항 등지에서는 이미 훈증처리를 해 비닐로 덮어놓은 곳이 삭아 노출된 곳도 있었다. 포항시 도시녹지과 김기영 담당은 "산림청에서는 훈증처리한 뒤 6개월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뒤처리에 고민 중"이라며 "유충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2년은 지나야 한다고 하는데 2년까지 가는 비닐이 없을 뿐 아니라 보완사업을 위해서는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나 경산나들목 검문소에서 소나무 이동 등을 검사하는 정청산(55) 감시원은 "소나무 적재차량에 대해서는 행선지 등을 기록하지만 육안으로 구별할 수도 없고, 주로 조경용 소나무의 반출 및 이동이 새벽시간대에 이루어져 감시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나?

경북도내에서는 지난 2001년 구미시 지산, 오태동 일대 임야 1천655그루(309ha)의 소나무가 처음으로 재선충에 감염된 사실이 발견됐다. 이후 급속도로 퍼져 올해의 경우 지난 20일 현재 5만1천950그루가 감염목 및 의심목으로 판명났으며 그중 4만6천200그루가 제거됐으며 현재 5천750그루가 남아있다.

지역별로는 포항이 2만1천219 그루로 가장 많고, 구미(1만5천442그루), 칠곡(5천784그루) 순이었다. 특히 지난 4월말까지는 포항, 구미, 칠곡, 청도, 경주 등 5개 지역에서만 발견됐으나 이후 기존 7개 지역에서 추가로 발견된 것은 물론 안동, 영천, 경산 등지에서도 발견돼 재선충병이 점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방제하나?

재선충병이 감염된 소나무는 현재로서는 소각외 다른 방법이 없다. 나무를 길이 2㎜로 잘게 잘라 톱밥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무내에 숨어 있는 유충을 죽여 병의 확산을 원천 차단해야 하기 때문. 가지 부분과 낙엽은 모두 소각 처리하고 베어낸 부분의 뿌리도 모두 캐내 석유를 뿌려 태운 뒤 약품처리를 거쳐 비닐로 씌워 훈증처리해야 한다. 이는 재선충병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죽이는 과정이다.

특히 피해목이 발생하면 인근 5km에 저지선을 구축한 뒤 확산을 막기 위해 5m 이내의 소나무는 모두 베어내 소각, 훈증 처리를 해야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자명한 사실. 구미시 임봉환 산림방제담당은 "올해 예비비 2억 원을 투입, 5회에 걸쳐 3천500ha의 임야에 항공방제를 실시했고, 기존 발생지 주변지역의 감염이 우려되는 1만5천542그루의 소나무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안동시의 경우 지금까지 피해목과 감염 우려목 2천800그루를 베어냈고 앞으로 연말까지 1천300그루를 추가로 베어내는 한편 내년에 대대적인 방역과 예방을 위해 15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두고 있다.

김성우·임성남·정경구·김진만·이채수기자

사진: 재선충병 피해지역인 포항시 기계면 내단리의 속칭 '뱀산'은 소나무가 베어져 민둥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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