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함께

입력 2005-04-13 08:51:48

자갈밭 개똥밭에는 쑥이 참 잘도 크는데요

빈 손에 쑥대머리라고 핀잔만 주는데요

돌절구 쑥물 한 대접 오장이 다 편한데요

내 새끼 쑥쑥 자라 돈 많이 벌면요

날마다 쑥설쑥설 쑥덕공론 천지라도요

쑥대가 왕대보담도 못할 게 뭐 있나요

저 양반 쑥스러워 내 눈을 외면해도요

왕년에 쑥버무리 안 먹고 큰 놈 있나요

자줏빛 쑥부쟁이꽃 첫사랑도 숨겼지요

부황 든 도시마다 쑥대밭이 됐지만요

팔 뻗고 허공으로 쑥떡 한 개 먹이고요

등창 난 세상 물어서 쑥뜸질을 놓습니다요

최영효 '쑥'

열두 행 끝이 모두 '요'로 끝나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제목까지 포함해서 '쑥'이라는 말이 열여섯 번이나 나온다.

이 점 역시 의도적이다.

네 수를 한 연으로 한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쑥을 통해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어려운 데가 없고 그대로 읽히며, 되풀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자연 회복 의지, 혹은 끈끈한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한다.

특히 마지막 수에 와서 잘 승화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이 시편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정형 안에서 이와 같은 실험은 매우 뜻 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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