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정직'캐는 해녀 할머니

입력 2005-01-20 08:44:21

이렇게 살아요-구룡포 해녀 이상란(63)씨

'휘이∼ 휘이∼.' 날씨가 좋은 날 구룡포 앞바다에 가면 낯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언뜻 듣기에는 휘파람 소리 같지만 사실은 물질(수중작업)에 한창인 해녀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다.

바로 해녀들 특유의 호흡萱?'숨비소리'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저편에서 들리는 해녀들의 숨소리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묘하게 어울리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과거, 잠수복과 갈고리 하나로 험한 바다밑에서 전복과 소라, 성게 등 각종 해산물을 걷어올리던 해녀들은 '바다의 산업역군'이었다.

하지만 삶의 질이 나아지면서 힘든 일을 기피하는 추세에 따라 해녀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70년대 구룡포에서 1천여 명이 넘던 해녀가 지금은 400여 명에 불과하다.

구룡포읍 석병2리 이상란(63) 할머니는 45년째 물질을 하고 있다.

꽃다운 나이인 18세 때 당시 제주도에서 이사 온 해녀가 물질을 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따라 배운 것이 평생의 업이 되고 말았다.

이 할머니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업이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그래도 해녀일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할머니의 물질 실력은 중군급. 10여 년 전만 해도 젊어서(?) 상군에 속했지만 지금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마따나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해녀들은 고무잠수복과 수경, 허리에 두르는 3kg짜리 납덩어리, 갈고리, 오리발, 두름박 등의 작업장비를 갖추고 주로 수심 10m 이내의 연안어장에서 해산물을 채취한다.

바다 위에 띄워 놓은 스티로폼 두름박은 생명선인 셈.

이 할머니는 한 번 잠수하면 5~7m 깊이에서 1분30초 정도 물 속에서 버틸 수 있다.

오전 7시쯤 물질을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물질을 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전복 3kg을 채취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어자원 고갈 등으로 인해 어획량이 많지 않다.

이 할머니는 "상군급 해녀는 물 속을 알기 때문에 값비싼 전복 등을 캐지만 나이 든 해녀나 경험이 부족한 해녀들은 작업량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일러주었다.

이렇게 얻는 연간 700여만 원의 소득은 대부분 생활비와 경조사비, 손자들 용돈으로 사용한다.

자녀들은 이제 그만 편히 쉬시라고 성화를 내지만 할머니는 몸 성할 때 일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면서 일흔까지는 계속 할 생각이다.

그러나 해녀일이 쉽지만은 않다.

끼니를 거르고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한 데다 바닷속 해초의 흔들림 때문에 어지럼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멀미약을 복용해야 하는 고충도 있다.

바닷속에서 갑자기 조류가 바뀔 때는 조류에 휩쓸릴 수도 있으며 장화나 부유물로 인해 깜짝 놀라는 일도 많다.

해녀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잠수병'이다.

수중에서 작업하다 숨이 차면 급하게 올라오는 반복된 잠수 작업 특성상 수압차에 의한 질소 축적으로 귀막힘과 두통, 관절통 등 만성적 잠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젊은 사람 중에는 해녀를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석병2리의 해녀들도 제일 젊은 축이 50대고 60대도 많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해녀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면서 "이러다간 해녀의 맥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하태식(60) 석병2리 어촌계장은 "40대 해녀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렸다"면서 "전국의 어촌계마다 해녀가 줄어들고 있어 해녀라는 직업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몸이 심하게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물질을 거른 적이 없다는 이 할머니는 "해녀들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바닷속을 매일 볼 수 있는 데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살기 때문에 마음이 어느 누구보다 풍요롭다" 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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