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 바이올린독주회를 보고

입력 2004-12-30 14:41:04

한해가 저물어 간다.

어둠속으로 스며드는 12월의 낙조는 스산해진 세월의 뒤안길을 헤매는 것 같다.

세모를 앞둔 28일, 올해를 마무리 할 미도리 바이올린독주회가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찬바람에 잔뜩 움츠러진 몸을 녹이려는 듯 그녀는 봄의 입김으로 객석의 문을 열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에서 그녀는 화사한 봄의 행복감 대신 잔설의 초봄에 움트오르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그렸다.

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섬세한 필치로 몸의 은밀함을 노래하고 있었다.

고난도의 기교와 극적 긴장감을 요구하는 윤이상 '소나타'에서는 그녀는 차가운 열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드뷔시 '소나타'에선 곡마단 소녀의 공중묘기를 연상케하는 변화무쌍한 곡상의 굴곡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피날레로 브람스 '소나타 제3번'에선 멜랑콜릭하고 로맨틱한 서정, 넘치는 열정을 예민한 감성으로 관조하고 있었다.

피아노(맥도날드)와 호흡을 맞추며 가녀린 체구로 나비처럼 하늘 그리는 그녀의 몸의 율동은 물 흐르듯 유연한 음의 흐름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들고 있었다.

힘있는 모잉에서 오는 음악적 역동감, 포르테에서 내뿜는 에너지 등 폭넓고 풍요로운 음량과 음색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나 절도 있는 프레이징과 능란한 기교로 안정감속에 예리한 표현력, 감정의 군더더기를 절제한 이성적, 학구적 표현력, 작품에 몰입하면서도 격정을 통제하는 능력 등을 통해 이젠 30대 중반(1971년 일본 오사카 출생)의 성숙기에 접어든 그녀는 비슷한 또래의 소피 무터, 뮬도바와는 다른 그녀만의 독특한 컬러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작곡가의 의도와 작품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개성으로 소화해 내는 예술적 역량은 지금까지 그녀에게 쏟아진 국제적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미도리와 친구들'이란 음악재단과 맨하탄 음대를 통해 젊은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그녀가 이날 뽑아낸 피아니시모의 오묘함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을 여운을 남겼다.

서석주·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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