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펴낸 작가 이대환

입력 2004-12-25 08:54:26

포스코 신화를 이룩한 철강왕 박태준의 인생 77년을 총정리한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현암사)을 펴낸 작가 이대환(46). 작가가 쓴 856쪽에 이르는 박태준 평전은 외국에서 나오는 수작(秀作)의 전기에 비견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현존하?인물의 전기는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시도이다.

작가가 박태준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5월. 포항이라는 지역적 인연이 많이 작용했다. "포항공대 이야기를 '노벨동산의 신화'라는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이미 박태준이란 인물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칠순 노인의 동심어린 표정에서 대단한 사람임을 직감했지요."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의기투합했다. 경상도 말로 '배짱'이 맞았다고나 할까. 그후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이해할 만큼 숱한 만남과 대화를 가졌고, 그 기록이 오늘의 박태준 평전을 탄생시킨 것이다.

작가는 그러나 주인공에 대한 평가에 있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설명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았다. 평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하나의 미덕은 주인공과 작가의 8년에 걸친 허심탄회한 대화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작가의 자료섭렵과 현지답사이다.

작가는 그동안 주인공과 한집 일원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가장 많은 대화를 했으며, 주인공의 자취를 추적해 포항과 광양·일본·하와이·미국·베트남·유럽 등을 탐방했다. 이를 토대로 경제인으로, 정치인으로, 자연인으로 살아온 박태준의 일생을 고스란히 되살린 것이다.

올해 희수(喜壽)인 박씨는 놀라운 기억의 소유자로 50년 전의 일도 대개 월(月)까지 맞출 만큼 비범했다고 한다. 그 같은 기억과 술회가 이 책의 뼈대이다. 박태준은 권력자의 깊은 신뢰를 받았지만 그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고, 권력을 과시하지도 않았으며, 부패하지 않았다. 그것이 모래벌판에서 포항제철을 일구고 혼탁한 정치권에서도 큰 낭패없이 끝맺음을 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작가는 평가한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박태준의 삶과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을 일군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적잖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시대인 1920년대에 태어나 전쟁과 빈곤의 악조건을 거치고 경제개발의 최전선을 달려온 그의 삶은 바로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사이자 정치이면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 박태준의 삶의 여정이 녹아 있다.

포항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학시절을 빼고는 줄곧 포항에서 살며 고집스럽게 리얼리즘 정신을 추구해 온 작가 이대환의 문학세계는 이렇게 포항의 인물들과 인연이 많다. 지난 6월 펴낸 장편소설 '붉은 고래'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포항 어느 허씨 일가 삼형제의 삶을 배경으로 아픈 현대사를 조명한 작품이다.

2001년 펴낸 '슬로우 불릿'도 영일만에서 살다 간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처참한 실상을 상기시키며 베트남전쟁의 추악한 실체를 폭로한 소설이다. 이대환은 그렇게 우리 현대사의 어둡고 아픈 사실을 끄집어내 반성적으로 되새기게 하며 건전하게 기억시키려 하는 작가이다.

지금은 포항제철의 웅대한 용광로가 치솟아 있는 영일만 어링불이 고향인 그는 바다노래와 더불어 삶의 실핏줄을 짜왔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포항문학운동의 한중간에 서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경북지회장이기도 한 그는 소외된 지방문화를 활성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포항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포항을 읽으면 한국이 보입니다." 작가는 '멀쩡한 사람을 잡아먹은' 다음에야 바른 길로 가는 역사와 현실을 아파하며 '인간의 얼굴을 갖춘 자본주의 세상'을 소망한다.

문단의 각광과 상업적인 조명을 못받아도 당대를 활보하는 야만에 올곧은 서사정신을 지키며 살고 싶은 것이다. 영일만의 매운 바닷바람이 문학의 원초적인 반체제성을 노래하듯, 그렇게 싱싱한 작가정신을 잃지 않으려 한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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