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함께 살기-유방암으로 고통받는 최선화씨

입력 2004-12-15 14:02:05

14일 늦은 오후 '아름다운 함께 살기' 취재진이 만난 최선화(42·여·동구 불로동)씨는 밤색 비닐 반코트가 길게 느껴질 정도로 작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가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지난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도 머릿속 고통을 도려내고 싶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눈물을 흘렸다

지난달 13일 식당일을 함께 하던 한 아주머니가 "가슴이 돌처럼 딱딱하다"라며 그에게 병원 진료를 권유했다.

'설마'하고 찾아갔던 병원에서 그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

암세포가 임파선을 타고 겨드랑이까지 전이돼 그 쪽도 도려냈다.

그녀의 배가 볼록했던 이유는 수술한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고름, 진물을 받는 작은 통을 허리에 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아다.

포항 어느 고아원에 버려진 자신을 가톨릭 신부였던 원장선생님이 거둬 열두 살까지 키웠다.

마침 '학교도 보내주고 딸같이 키우겠다'라는 입양 부모가 나타나 아주 잠시 행복했다.

그러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포항 바닷가 어느 횟집으로 입양된 그는 양부모의 모진 학대에 시달렸다.

학교는 고사하고 식모처럼 그를 부렸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오징어잡이에 막걸리를 팔았다.

16세 때 대구 어느 전기부속품 공장으로 팔려(?)나갔다.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지만 가엾은 자신에게 세 끼를 꼬박꼬박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감사했다.

그후 대구 어느 가정집 파출부로 들어간 그는 주인 아저씨의 이유없는 뭇매와 폭력에 시달리다 27세 때 남편을 만나 잠시나마 행복을 누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는 등 또다른 불행과 맞닥뜨렸다.

치료비가 여의치 않아 부상의 아픔을 술에 의지했던 남편은 결국 알코올중독에 정신질환자가 돼 버렸다.

"나도 이제 가정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행복은 또 저를 비켜가더군요. 모아둔 돈을 남편 치료비로 탕진했지만 정작 힘든 건 남편의 경기와 발작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

지금 남편은 왜관의 어느 병원 알코올병동에서 치료 중이다.

"부모 없이 크는 아이의 설움을 아세요? 정 붙일 때가 없으니 조금만 잘 해 줘도 무조건 의지하게 되지요. 나는 부모의 정을 모르고 컸지만 우리 애들에게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요."

고아였기 때문에 성(姓)이 3개나 되는 그녀. 자신의 몸뚱어리 하나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파출부에 식당 보조일까지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했던 그는 이제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약값에 생활비까지 걱정이다.

1종 의료보호 대상자로 본인부담금은 적은 편이지만 암(癌)은 건강보험 비적용 항목이 많아 정부에서 지원되는 40여만 원의 기초생활보호대상 지원비로는 어림도 없다.

얼마 전 큰 딸 진미(17·가명)는 그래픽 디자이너, 민수(14·가명)는 사격선수가 되고 싶다고 엄마 품에서 속삭였단다.

그는 아이들의 꿈이 이뤄질 때까지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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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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