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국민연금 "저축보다 못하다"

입력 2004-12-15 12:03:00

북구 침산동에서 식당업을 하는 이모(67·여)씨는 지난 99년부터 국민연금을 납부한 뒤 지난 4월부터 '특례 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가입 기간을 연장할 경우 매달 12만 원 상당을 납부해야한다는 연금공단의 말에 결국 그 동안 낸 연금만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쥐꼬리'만한 연금에 그만 질려버렸다.

"6만 원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엔 9만 원 조금 넘게 연금을 납부했습니다. 그런데 한달에 국민연금이 10만 원 정도 나오더군요. 연금받아서 전기와 수도요금, 주민세 내고 나면 남는게 없습니다. 식당일을 그만 두고 싶어도 지금받는 연금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장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연금만 받으면 '고생 끝'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이씨는 요즘도 새벽 장에 물건을 떼러간다.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에 대해 불신 또는 불만을 가진 가입자가 4명 중 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소득층의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감은 '불신연금', '궁(窮 : 궁핍할 궁)민연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당초 전국민 연금 확대 당시의 약속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

목욕탕 이발사인 서모(64)씨는 4개월 전쯤 연금공단측에서 내년 8월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달부터 연금납부액이 8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씨가 내년부터 받게 되는 수령액은 약 12만 원. 서씨는 "12만 원이면 하루 4천원 꼴인데 노후생활 보장을 해준다더니 과자값도 안되는게 생활보조금이냐"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까지 낸 돈을 한꺼번에 받아서 풍족하게 생활하고, 저축한 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고 했다.

국민연금 혐오론도 번지고 있다.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구시 노인복지종합계획 연구팀이 만 65세 이상 노인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년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회보험연금을 믿고 있다'고 답한 대상은 310명(15.5%)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세금이 돼 버렸다. 명색이 보험료나 마찬가지인데 안냈다고 재산까지 압류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미래 보장도 없는 세금이다.

모회사에서 매점을 경영하는 김모(44·여)씨는 국민연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사업자명의를 다 바꿨다. 매점은 동생 명의로, 동생이 운영하는 작은 공장은 나이가 많아 연금 납부대상이 아닌 어머니 명의로 바꿨다. 4년 전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김씨는 현재 소득이 한 푼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동생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난 88년부터 12년 동안 사업장가입자로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냈기 때문에 1천200만 원 정도가 연금공단에 적립돼 있다. 하지만 연금수급 최저기한인 20년을 채우려면 앞으로 8년을 더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어떻게든 내지 않고 버텨볼 생각이다. "사보험이나 은행적금은 급할 때 빼내 쓸 수라도 있죠. 일시불로 받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요." 김씨는 보험업을 하는 친구와 계산해 본 결과 수령절차도 쉽고 수령액도 많은 사보험이 훨씬 이득이라고 했다. "의료보험은 그나마 아플 때 효과라도 볼 수 있지만 연금은 안 그렇죠. 65세까지 살 보장도 없고. 국민 대다수가 싫어하는데 왜 강요하는지 모르겠네요."

병이 두려운 건보 가입자들

"처음에는 병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돈이 겁납니다." 지난 10일 대구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만난 간암환자 박모(60·달서구 상인동)씨는 3년간의 투병생활로 무척 지쳐있었다. 그간 지불한 치료비만 5천여만원. 초음파검사, MRI검사부터 항암주사까지 모두 자부담이었다. 한 병에 10여만원인 항암주사는 한때 5일 내내 꼽고 있기도 했다. 박씨는 "의사가 보험이 안되지만 독성이 덜하니까 쓰겠냐고 물으면 따를 수밖에 없다"며 "건보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다니 내년엔 보험 적용폭이 확대되기만 기다릴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건보 가입자들은 늘어나는 보험부담에도 불구, 실제 혜택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보험재정 파탄 이후 비보험 진료가 매년 증가,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 몫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환자가 병·의원에 내는 돈은 2001년 총 진료비의 34.5%에서 2002년 37.3%, 2003년 41.2%, 올해 43.6%로 계속 증가했다. 3년새 본인부담분이 9.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같은 기간 비보험 진료비도 7.6%에서 21.3%로 급증했다. 이 같은 환자 본인 부담비율은 OECD 국가중 멕시코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 저소득층 장기입원 환자들은 가정 파탄에 이를 지경이 됐다.

지난 달 초 말기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돼 조직 절제수술을 받고 대구시내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지체장애인 전모(58·서구 평리동)씨. 수술비 400여만원을 보험적용 받았지만 여전히 눈앞이 캄캄하다. 항암제 '캠프토' 비용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건보공단의 통보 때문. 수술후 항암치료는 예방을 위한 '보조요법'에 해당돼 보험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씨는 "1회 10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를 최소 6개월간 18차례는 더 받아야 한다"며 "대학생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받는 월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라며 고개를 떨궜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최근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비보험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MRI, 초음파진단, 식대, 특진료, 상급 병실료 순으로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급여 확대 등 대대적인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내년부터 5대 암 검진 사업, 항암제의 건강보험급여확대, 암환자들에 대한 MRI검사 보험급여 적용 등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저소득층 암 환자들이 마음놓고 치료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건보공단이 지난 2년간 1조 원 이상 당기 흑자를 거둔 만큼 보험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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