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의 산 증인'으로 대한민국의 외교사에 한 획을 그었던 해오(海吾) 김동조(金東祚) 전 외무장관이 86세를 일기로 9일 오후 타계했다.
격동기 반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낸 고인은 14년의 외교 대장정 끝에 이동원(李東元) 외무장관(당시) 등과 함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끌어 낸 인물로 외교가 국익수호와 직결됨을 여실히 보여준 한국 외교계의 '큰 별'로 통한다.
김 전 장관은 전후 1세대 외교관으로서 한·일회담을 비롯해 베트남 파병, 박동선(朴東宣) 로비 파동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중심에서 한국 외교를 개척했다는 평판과 '굴욕적 한일회담의 주역'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인들은 고인이 세간의 긍·부정적인 얘기에 크게 괘념치 않는 그야말로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외무장관과 통일 부총리를 지낸 최호중(崔浩中) 외교협회 전 회장은 "외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 떠나시게 돼 안타깝다"며 "김동조 장관 하면 무엇보다도 한·일회담 타결의 공적을 높이 떠올리게 된다"고 애도했다.
최 전 회장은 "한국 외교사에서 주일 대사(초대)와 주미 대사를 연거푸 한 분은 김 장관이 유일하다"며 "그는 수석대표를 맡았던 한·일회담 등 협상이 진척 안될 경우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큰 줄기를 잡으라며 실무진을 독려하는 등 배짱과 담력이 센 외교관"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6년간 재직한 주미대사 시절 미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 두드러진 활동을 한 스타 대사 5인방'에 선정돼 표지에 게재된 적도 있다.
외무장관(1973∼75년)에서 물러난 뒤 1976년 대통령 외교담당특별보좌관, 1977 년 남북조절위원, 1979년 석유개발공사 사장을 맡은 데 이어 1981∼2000년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9년 이후 해오실업(주) 법률 고문과 2000년 (주)현대종합상사 고문도 지냈다.
저서로는 '회상 30년 한일회담', '회상 80년 김동조 회고록', '냉전시대 우리외교' 등이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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