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입력 2004-12-10 09:45:33

공주형 지음/학고재 펴냄

"당신은 어떤 작품을 좋아합니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머릿속에 '고흐·샤갈·뭉크…'등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의 저자 공주형씨는 같은 질문에 대해 유명작가를 앞세우지 않는다.

단지 '내 삶의 가쁜 호흡과 내 삶의 거친 맥박을 함께 나누는 작품'이란 소박한 대답으로 대신한다.

이것이 최근 출판계에 유행처럼 불어닥친 미술 대중서들과 이 책이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마음에 든 그림을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명작'이란 수식어가 붙은 작품들 앞에선 무언가 특별한 감동을 느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미술사적 의미에 짓눌려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강박관념을 걷어내고 그 시절과 현대의 그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연대감을 강조한다.

도미에의 '삼등열차'에 나오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남루한 기차안 풍경과 21세기 한국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무기력하고 피곤한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반면 같은 시간 '일등 열차' 안에는 최첨단 패션으로 치장한 승객이 넉넉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고독한 개인의 쓸쓸함을 읽어낸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본 그 누군가와 비슷한 표정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지하철 안에서 도미에를 여전히 동행으로 여긴다.

윤석남의 설치작품 '어머니의 방'에서 안락의자에 솟아있는 못과 정작 어머니가 부재하는 어머니의 방을 보면서 잠시도 앉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어머니·아내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 땅 모든 어머니들의 고단함을 읽어낸다.

'미술 작품 감상하기'를 사치스런 취미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명작이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500밀리미터 종이팩에 담긴 우유를 우유병에 옮기며 '우유를 따르는 여자'를 생각해왔고 남편 셔츠의 단추를 달면서 '레이스 뜨는 여자'를 흉내내고는 했다'고 고백한다.

이쯤되면 누구나 명작이 전해주는 감동 덕분에 자신의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등장시킨 작품의 작가들은 미켈란젤로·고흐·다 빈치에서부터 박수근·강운구까지 50명이 훌쩍 넘을 만큼 다양하다.

이 때문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보다는 감상 포인트를 제시해주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명화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명화란 어떤 그림일까. 사람들은 묻는다.

나에게 명화란 이름있는 작가의, 널리 알려진 그림이 아니다.

어떤 그림이 있어 그 그림이 오늘 저녁 퇴근길에 아름다운 동행이 되고, 어느 울적한 가을날에 따뜻한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중략)…나에게 명화란 내가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이자, 내가 써내려가는 내밀한 고백과도 같은 그림들이다.

이런 까닭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그림을 보여주고픈 것은.'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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