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입력 2004-12-03 09:00:09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박철 옮김/시공사 펴냄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돈키호테(Don Quixote)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서양고전 추천 명단의 맨 앞 부분을 차지하는 '돈키호테'는 매번 새 판본이 나오고 끊임없이 재조명되며 읽히는 작품이기 때문. 동시에 오페라, 연극, 영화, 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왕성한 활동력은 대단할 정도다.

게다가 2년 전 노벨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400년 전 사람인(그것도 스페인 라만차 지방 사람인데) 돈키호테에게 어떤 매력이 있기에 수많은 현대인들의 넋을 쏙 빼놓는 것일까. 최근 책 출간 400돌을 앞두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부를 완역해 펴낸 박철 교수(외국어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돈키호테는 '오늘'보다는 '내일'을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우리가 패배하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요. 복잡다단한 요즘 세상에서 그의 삶은 아마도 우리가 한번쯤 꿈꿔본 인생이 아닐까요."

책은 세르반테스가 57세 때(1605년) 출간했던 '돈키호테' 1편만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됐던 수많은 돈키호테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 일어 및 영어판을 중역해 돈키호테의 진정한 맛을 살리지 못했던지라 스페인어판 원저를 한 줄도 빠짐없이 완역한 이 책의 묘미는 확연히 다르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의 본성과 세태를 꼬집는 세르반테스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난다.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양떼를 백만 군졸로 착각해 돌격하며, 비를 피하기 위해 놋대야를 눌러 쓴 이발사를 보고 황금 투구를 쓴 기사라고 공격한다.

풍차를 흉악한 거인으로 몰아 달려들고, 길 가는 수도사들에게 공주님 납치범이니 응징한다고 덤비는 돈키호테의 황당한 좌충우돌 행각은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또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벌이는 모험이 단조로울 것을 걱정한 작가가 소설 속에 덤으로 넣어둔 7개의 액자소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더불어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도서 삽화가로 유명한 구스타프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 가운데 29점을 책갈피 사이사이에 넣어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흔히 앞뒤 생각 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는 조금 앞서 탄생한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한 햄릿과 대비돼 인물 유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갈망하는 우리나라 현 세태를 비춰볼 때 돈키호테는 아마도 우리에게 '구원자'로 인식될 법하다.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주위의 시선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고 다가가는 돈키호테야말로 요즘 필요로 하는 미래형 인간상이 아닐까.

돈키호테, 산초 판사와 함께하는 700쪽이 넘는 짜릿한 여정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같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돈키호테식 탈출을 권한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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