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 35년만에 처음으로 정년퇴직자를 배출한다.
KDI에는 지금까지 무려 1천여명의 연구원이 거쳐갔지만 '한국 최고의 두뇌들'을 탐낸 학계, 정계, 재계 등의 유혹으로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정년을 채우지 못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영예롭게 물러나는 학자가 나온 것.
29일 KDI에 따르면 산업·기업경제부 유정호(60) 선임연구위원이 올해말까지 24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해 KDI 사상 첫 정년퇴직자로 기록된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유 박사는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81년 KDI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의 '외도' 없이 연구원을 지켰다.
초대 원장으로 무려 12년간 원장직을 지냈던 김만제 전 의원을 시작으로 김중수 현 원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원장으로 모셨던 선·후배들만도 11명에 달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스탠퍼드대학원 초빙연구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자문관,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으나 모두 KDI 연구원 자격을 유지한 상태였다.
그동안 대학에서 교수로 와 달라는 요청도 많았으나 처음 부탁받은 대학이 여자대학이어서 부인의 질투섞인 반대로 거절한 것이 24년 외길을 걸어온 계기가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유 박사는 지난 98~2000년에는 부원장을 맡기도 했고 지난해까지는 경제정보센터 소장으로 근무했으나 지금은 선임연구위원으로 후배들과 함께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주로 국제무역, 통상정책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유 박사는 올해도 '관치청산,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라는 책을 펴내 후배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 박사는 "최근 새로 도입된 명예연구위원 제도 덕택에 1년간 KDI로 더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지난 96년 정년을 몇개월 남기고 작고하신 주학중 박사가 누구보다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80년대초나 지금이나 통상압력 문제는 여전하다"며 "중요한 것은 국내 정책과 통상정책이 따로 가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