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만큼 '정치바람'을 타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겁니다.
물론 흘러간 옛얘기에 불과하겠지요.
참여정부 들어 이 같은 경향은 현저히 약해졌지만, 아예 없어졌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동향인 간부들이 아직도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무시할 수 없겠지요.
불과 10년전만 해도 정권의 부침에 따라 TK인맥은 주요 보직을 독식하기도 했고 된서리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영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YS시절이 아닐까 합니다.
1992년 검찰에서 TK세력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습니다.
TK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경남고 부산고 인맥에 밀려 주요 보직에서 완전히 소외됩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줄줄이 밀려내려와 고향에 잔뜩 포진하게 됐지요. 당시 대구지검 검사가 45명 정도였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경북고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강탁 차장검사를 비롯해 형사1·2부장, 공안부장, 특수부장 등 주요 간부들은 모두 한 학교를 나온 분들이었지요. 각 부의 수석검사들도 대부분 경북고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대구지검은 간부의 80% 이상이 동창생인 비정상적인 구조였지만, 누구 하나 문제제기를 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물'먹고 내려온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대구지검 간부들은 낮에는 평온한 모습을 보였지만, 밤이 되면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습니다.
밤마다 술집을 돌며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발견됐지요. 그때만 해도 대구의 건설, 섬유가 활황세를 보일 때였으니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대구에는 좋은(?) 술집이 몇곳에 불과했는데 2, 3곳을 돌다보면 밤늦게쯤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게 보통이었지요. 술자리가 분기탱천한 분위기인 탓에 웃지못할 온갖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을 세워놓고 쥐어박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요…."
그때 울분을 토로하던 이들은 대부분 검찰에서 옷을 벗고 개업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검찰에 남아있는 이는 손꼽을 정도입니다.
당시 형사2부장이었던 정상명씨가 올초 대구고검장으로 '금의환향'했습니다.
그는 송광수 검찰총장을 이어받을 유력후보이기도 합니다.
정 고검장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단순히 TK힘을 빌렸기 때문이 아닌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요?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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