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20여곳 이전·신증축 '진통'
수성구의 한 장애인재활센터. 지난해 12월 개원한 이곳은 1년 가까이 간판조차 달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장애인에 장자만 들어가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간판 설치를 반대하기 때문.
또 주민들이 센터 설립 동의 조건으로 요구한 중증 장애인의 센터 출입 제한 때문에 이들을 위한 20여평 공간은 지금껏 텅 비어 있다. 장애인자립작업장이라는 명칭도 주민들의 뜻에 따라 장애인재활센터로 변경해야 했다.
동구의 한 치매·중풍 노인 전문요양시설은 주민들의 반대 시위 때문에 최근 개원까지 꼬박 2년을 허비했다. 주민들은 4개월간 철야 농성을 벌이며 마을 입구를 경운기로 차단해 공사차량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는 '입장료'가 필요했다. 주민들에게 마을발전기금을 기부하고, 절대 추가 신축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뒤에야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노인· 장애인 등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들은 이 사회가 보듬어야 할 '한가족'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이들을 '싫어'하고 있다.
최근 이전을 계획 중인 복지시설이 늘고 있지만 '혐오시설'로 모는 주민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이기 일쑤다. 어렵게 이전이 성사돼도 막무가내식의 비싼 '입장료'까지 덮어쓰고 있다.
낡은 건물의 증·개축도 주민 눈치를 살펴야 하고, 주민을 위해 만들어진 복지관조차 '기피시설'로 간주할 정도다. 관계기사 3면
대구시내 노인·장애인·아동복지시설은 98개.
아동복지시설(24개)은 1953년 제1아동보호소가 들어선 이후 대부분이 60, 70년대에 들어섰다. 노인(27개)·장애인(47)시설은 1981년 관련법 제정 이후 정부지원을 통해 집중적으로 생겼다.
이들 시설은 대다수 변두리에 위치했으나 급속한 도시 팽창으로 지금은 도심 주택밀집지역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다.
취재팀은 대구시 등에 이들 시설의 이전 및 신증축 계획 자료가 없어 지난 11일부터 18일까지 복지단체, 시설 관계자 등을 상대로 이전 관련 탐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장애인시설 경우 9개, 노인은 7개, 아동은 6개가 이전 및 신증축을 계획중이지만 주민반대에 부딪혔거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구의 한 지체장애인시설 경우 2년전부터 나중에 이사온 주민들에게 '냉대'를 받고 있다. 주민들은 이사오자마자 먼저 들어선 시설의 이전을 요구했다. 주변 땅값이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 1978년부터 24년간 시설 1km 주변에서 보행훈련을 실시해오던 원생들은 주민들의 민원때문에 지난 2년간 원 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또 중풍노인 등이 기거하는 수성구 한 시설은 주민들이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고 땅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증축 공사를 반대했다. 공사차량 진입을 막는 등 주민들의 물리적 반대 시위는 2001년 10월부터 6개월 이상 이어졌고 시설 측은 법정공방까지 벌여야 했다. 박모 원장은 "결국 법정에서는 이겼지만 후환이 두려워 증축을 포기했다"며 "지난해 동네발전기금을 전달하고 나서야 시위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수성구의 한 복지관은 최근 인근 지역에 이전을 추진하다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시달려야 했다. '공사차량을 진입시키지 말라', '주택가쪽으로 창문을 내지 말것' 등의 수많은 요구 조건이 쏟아졌다. 결국 구청의 민원배심원제를 거쳐 겨우 건축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복지관 관계자는 "남도 아닌 주민들이 애용하는 복지관조차 '님비'로 기피하는 데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대구시사회복지협의회 김홍렬 사무국장은 "'무조건 안돼'라는 왜곡된 사회 인식과 이로 인한 이웃 시설의 고통을 수 없이 봐온 터지만 이 같은 사회 풍조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우리 사회가 노인· 장애인 등 시설 거주자들을 문전박대하고 있다.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성숙한 포용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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