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삶-(11)네팔 : 부다나트·쉬염부나트

입력 2004-11-22 16:49:37

굳이 큰 길이 막히지 않는데도 집들과 사람이 빽빽이 들어선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달려온 택시는 먼지 가득한 거리에 여행자를 무작정 내려놓는다. 네팔 최대의 스투파(불탑), 부다나트를 확인하기도 전에 "여기(here)"를 내뱉고 택시는 오던 길을 달려가 버린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인간의 무지를 꾸짖기라도 하는 것일까?

가게들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던 높이 40m의 거대한 불탑은 입구에 이르러서야 얼굴을 드러낸다. 매표소를 지나자 순례자들이 시계방향으로 코라를 돌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티베트인들이다. 아니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는 토산품 가게의 대부분도 티베트 풍이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지친 유랑을 받아준 부다나트는 그 이름이 말하듯이 부처(Boudh)의 사찰(Nath), 즉 깨달음의 사찰이란 뜻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조캉사원의 뜻이 부처의 집이고 보면 부다나트의 티베트 사람들의 정착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이고 비록 여행자의 처지는 아니지만 난민의 아픔을 보듬어 안은 네팔 사람들의 선한 심성이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부다나트는 사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스투파다. 스투파는 탑을 말하는 것인데 탑이 사찰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는 우리네 시각에서 보면 탑이 곧 사찰이라는 형식은 낯설다. 하지만 탑이란 부처 이전에 이미 인도에 있었고 불탑의 형태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기리기 위해 탄생한 불교 신앙의 원류였다. 결국 불상이 탄생하기 전부터 탑은 불상을 대신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네팔은 불탑에 그려놓은 특유의 "예지의 눈"으로 인해 그 자체가 불상의 한 형태처럼 보인다.

현재의 스투파는 15세기에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예전에 네팔과 티베트를 잇는 무역이 성행했을 때에 티베트의 상인들과 순례자들은 반드시 이곳에 들러 그동안 무사한 히말라야 여행을 감사하며 돌아가는 길의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개인의 해탈보다는 불력에 기대는 것이 더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탑으로 오르는 출입구에 구걸을 하는 네팔 여인이 아이를 안고 졸고 있다.

아이가 빨고 있는 메마른 젖이 눈에 밟힌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예지의 눈"은 그녀에게, 그녀의 아이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을 수 있는 땅이 없다면, 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 구걸이 삶의 마지막 수단이라면, 그녀에게 깨달음은 사치가 아닐까? 아마도 "예지의 눈"은 허락했으리라! 깨달음의 탑을 찾는 이들에게 공덕을 쌓는 순간을….

스투파의 구조는 만다라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5가지 에너지(땅, 물, 불, 바람, 하늘)를 상징한다. 땅을 상징하는 대좌는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간의 몫은 그곳까지로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 그 위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반구는 물을, 그 위의 사방을 응시하는 예지의 눈과 13층의 첨탑은 불을, 그 위의 둥그런 우산 모양은 바람을, 그 위의 작은 첨탑은 하늘을 상징한다. 특히 돔과 정상부 사이에 1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첨탑은 완전한 해탈, 깨달음을 얻기 위한 13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 아이가 4층 대좌에서 오색 룽다를 피해 연을 날리고 있다. 연은 중심이 맞지 않는지 자꾸만 곤두박질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에 연을 맡긴다.

가게에 들러 엽서를 산다. 여행을 하면서 되도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리운 이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 우체국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끔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왜 아직도 번거로운 편지지냐고, 그저 소식이나 전하는데 이메일이면 어떠냐고 탓해보기도 하지만 의미가 없다.

이미 발품을 파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여행자에겐 세금 고지서처럼 메마른 이메일보다는 손끝에 전해지는 따뜻함이 편지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먼 길을 돌아 사람보다 뒤에 도착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조차도 사람의 숲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여유롭다. 오랜 그리움이 삭제(Delete)키 하나로 지워져 버리거나 수많은 스팸 속에 묻혀 버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이래저래 구닥다리가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네팔에서 가장 큰 스투파가 있는 부다나트는 그래서 이메일이 아니라 종이 편지다.

카트만두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스투파인 쉬염부나트로 향한다. 전설에 따르면 신들이 사는 히말라야의 산기슭에 푸른빛을 발하는 호수가 있었다. 이 호수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지혜 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카트만두 분지가 되었고 맨 처음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른 곳이 바로 쉬염부나트다.

실제로 이 전설은 많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카트만두 분지는 약 3만 년 전 호수였고 쉬염부나트가 있는 산허리 또한 전설처럼 지질학적인 변화를 겪었다. 전설이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오랜 구전을 통한 문화임을 증명하는 것이 경이롭다.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시내에서 우뚝 솟은 구릉지대는 그것만으로 숨이 가쁘지만 입구부터 만들어진 돌계단은 깨달음의 길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돌계단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원숭이를 쫓으며 아이들이 부처상에 앉아 있다. 왼편에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닌다는 가루다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사원은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된 형태임에 틀림이 없다.

어느 것이 먼저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종교를 핑계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를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신이 아니라 우리의 신을 보여주기에 따뜻하다. 가파른 돌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부처의 눈이 여행자를 맞는다. 스투파를 한 번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이 쌓아진다고 믿기 때문일까? 스투파를 따라 마니차를 돌리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스투파 뒤쪽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사람과 그 곁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여자들이 붉은 가루를 뿌려댄다.

원시적이고 거칠어 보이지만 종교가 세련되어 갈수록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오히려 편하다. 사원 한쪽에 만들어진 전망대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굳이 돈을 내고 망원경을 보지 않더라도 카트만두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보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겨냥한 상혼이 "예지의 눈"을 행여 흐리게 하지 않을까 두렵다. 막대기로 겨우 지탱되고 있는, 쓰러져가는 불상을 돌아내려오는 허허로운 길에 동자승이 책을 읽고 있다. 그 아이의 맑은 눈이 "예지의 눈"은 아닐까 ?

시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식인 달밧(Dhal Bhat)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음식이다. 밥과 콩 수프, 그리고 야채와 절임이 식판에 나오는 달밧은 밥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배고픔보다 서러운 것은 없다. 가난의 고통을 나누는 음식, 달밧은 그래서 더욱 맛이 있다.

배낭 속에서 석청(네팔의 꿀)을 본 군인들이 갑자기 폭탄이라도 발견한 듯 부산을 떤다. 암 수술을 한 선배에게 줄 선물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불법이라며 압수라도 할 태세다. 그러다 상급자로 보이는 이가 배낭에 손을 넣으며 돈을 달라는 표시를 한다.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들이 지키는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눈에 보인다.

방콕행 비행기는 벌써 출발시간이 두 시간이 넘었지만 안내방송조차 하지 않는다. 단 두 대의 비행기로 국제선을 운항하는 로얄 네팔 항공의 악명 높은 연착 또한 총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신이 되려는 자에게 신성을 잃어가고 있는 신들의 나라는 이웃의 지친 영혼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 세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병풍으로 둘러친 카트만두가 차창 밖으로 눈부시게 푸르다.

전태흥 자유기고가

사진: 부다나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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