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날을 세우고 덤벼들던 여름 동안 가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아 몹시 그리웠다.
이제 그 가을도 짙어졌다.
한두 잎 우아하게 떨어지던 잎들도 지친 것인가. 건듯 부는 바람에 빗물처럼 쏟아져 땅위에 눕는다.
떨어져 누워야 제 소명을 다하는 것인 듯 그렇게.
며칠 전, 올해 세 번째 문상을 다녀왔다.
팔순을 넘겨 떠난 지인의 부친 앞에서는 그저 경건하였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러나 후배의 영정 앞에 선 나는 눈물이 그렁하게 고인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감으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것이어서 자꾸만 눈물을 삼키었다.
영정사진 속의 그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어느 한 때, 자신의 세상과의 빠른 결별을 모르던 행복한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저 맑은 웃음이라니. 그가 웃고 있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렇게 처연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앞의 길 위로 무엇이 놓여 있을 것인지 모른다는 것에 우리는 암묵적인 동의를 한다.
어드멘가 우리를 부르는 그 무소불위의 힘은 인간이 세상으로 왔던 차례를 지켜주지 않는다.
모두가 그러하듯 그도 자신만의 지도와 나침반으로 항해하다 거센 물결을 만나 그 소용돌이에 부서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일순, 삶의 경계의 이쪽저쪽으로 나뉘어졌다.
사람살이의 허망함이여, 그 씁쓸함이여.
슬픔에 대한 저항력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슬픔이 올 때마다 면역 없어, 또 아프다.
여인답지 않게 성품이 호방하고 너름새가 푼푼하여 같이 있으면 유쾌해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선배라고 부르며 사진틀을 박차고 나올 듯하다.
성미 급한 사람, 어찌하여 그 길을 그리 서둘렀는가.
언제인가 한 친구가 악에 받친 우리들만 살아남았다고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아까운 한 사람이 가버렸다.
그리고 또, 남은 자들의 남루한 삶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장례식장을 나선다.
이제 나무들은 거의 벌거벗었다.
떨어져 누운 낙엽에 한해를 마감하는 우수가 묻어있다.
주변은 철시한 상가처럼 쓸쓸하다.
그 속을 조문객들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온다.
누구의 영전으로 가는가. 깊은 추모를 위하여, 그저 사람의 도리를 위하여, 모두들 분주하다.
그들이 이곳을 떠나는 순간 고인은 잊혀진다.
그것이 사람의 매정함이다.
아니 삶의 매정함이다.
한줄기 회한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가 병상을 지키기 얼마 전 만날 수도 있었다.
서로의 일정이 엇갈려 내일, 모레 하던 터였다.
얼마 후, 전화통화에서 그가 잠들었다는 가족의 말만 들었을 뿐, 그와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또 한 번의 통화에도 다를 바가 없었다.
유추해 보면 그때, 그는 이미 영면(永眠)으로 바투 다가서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그토록 황망히 가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미룰 것이 아니었다.
간단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에 치여 서로 만나지를 못했다.
무슨 우선순위가 그리 많았던 것일까. 그때 한 번 보았더라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으리. 이제, 이승에서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그가 몹시 그립다.
우리의 행로가 그리 긴 여정이 아니거늘, 좋은 사람 있으면 단박에 만날 일이다.
'이 다음에'라고 말하지 말 일이다.
이제 가을마저 가버리면 겨울이 오고 또 한 해가 간다.
이 해가 가기 전 그리운 사람 불러내어 얼굴 마주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남영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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