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시대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웰빙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웰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웰빙은 어느 곳에 사느냐, 즉 '택리(擇里)'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이 살 만한 곳은 교육여건이 좋은 곳, 좋은 학원이 있는 곳,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 대형백화점과 전망이 좋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에서 8학군이 있는 서울 강남 일대와 분당구 일대의 땅값이 가장 비싼 이유다.
하지만 막상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거처를 정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요즘 시대에 '복거'(卜居 ·살 만한 곳을 점쳐서 고른다)는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살 만한 여력이 있는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설교통부가 주최한 도시평가에서 전남 순천이 '살기 좋은 고장' 1위를 차지했다.
2위가 제주시, 강원 태백시가 3위였고 경북 구미는 8위, 경북 영주시가 10위에 올랐다.
이 조사는 친환경, 교통, 문화, 정보화, 참여, 관리 실태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조사의 결과는 지금으로부터 250여년전 청담 이중환이 당쟁과 유배로 이어진 힘겨운 삶 속에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아 20여년을 떠돌면서 집필했던 '택리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중환은 예안과 안동, 순흥, 예천 등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의 지역을 '신이 가르쳐 준 복지'라 하여 전국 제일의 거주지로 꼽았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에 태백산, 각화산, 문수산, 선달산, 소백산 등 큰 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산 아래에 낙동강의 지류인 금계천, 죽계천, 사천, 낙화암천, 운곡천, 황지천, 철암천 등 수많은 물줄기가 사람이 살 만한 땅을 펼쳐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는 '택리지-복거총론'에서 사람이 살만한 곳을 고르는 기준으로 "첫째로 지리가 좋아야하고, 다음 생리가 있어야 하며, 다음은 인심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조선 전역을 사람이 살 만한 곳과 살 만하지 않은 곳으로 나누어 관찰했다.
'다시 쓰는 택리지4 : 복거총론-어디에서 살 것인가'는 우리 국토를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등 4가지 테마로 구분해 사람이 살 만한 곳을 찾아가는 택리지의 본론이자 주제편이다.
또 한국의 정자문화와 서원, 당쟁으로 본 인심, 생리 등을 전통 풍수의 원리와 풍부한 사례를 통해 짚어낸다.
저자 신정일은 전주 황토현문화연구소장으로 지난 20여년간 1천여회 이상 전국의 산야를 발로 답사한 문화사학자다.
남한 7대 강의 발원에서 하구까지 5천리를 걸었고 산도 300여곳에 올랐다.
그의 삶 자체가 답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산을 오르내리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정경들을 스케치하고 마을과 사람들의 사연을 채록했다.
또 직접 찍은 사진들을 곁들여서 독자가 편안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했다.
'택리지'는 후대 사람들에게 '인문지리서'이자 국토에 대한 안내서가 됐다.
이 책도 택리지의 내용을 좇아 사람이 살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이중환이 택했던 전통적 지리관, 곧 자연의 이치를 이해해 땅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생활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따라 땅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본다.
하지만 저자는 택리지를 좇되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이중환의 원전이 비판받는 부분, 즉 이중환이 실제 전라도나 함경도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않고서도 당시의 사회 통념에 따라 이들 지역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한 부분 등을 비판적으로 짚어낸다.
이중환은 사람이 살 만한 곳 중 가장 좋은 곳을 시냇가 근처라고 했다.
물이 있으면 들이 있고 들이 있으면 오곡이 잘 자라니 그보다 더 살 만한 곳이 어디 있겠냐는 것. 대표적인 마을이 예안의 도산, 안동의 하회 마을이다.
그 다음으로는 진안 금산, 장수, 무주 등의 금강 상류 일대다.
이중환은 바닷가 마을이 물난리의 피해 등으로 가장 살기 힘든 곳으로 생각했다.
이 책은 단지 길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곳에 얽혀 있는 전설들도 들려준다.
영남의 4대 길지 가운데 한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주시 강동면의 양동마을. 이 마을의 유래에 의하면 '대대로 외손이 잘되는 마을', 즉 외손발복(外孫發福)의 터라고 하는데 이곳 손씨 대종가인 서백당은 3명의 훌륭한 선생이 태어날 길지였다.
이곳에서 이미 회재 이언적 등 2명이 태어났으므로 나머지 1명은 외손이 아닌 손씨 집안에서 태어나도록 하는 바람에서 며느리 외에는 그 누구도 거처하지 못하게 했다는 속설이 있다는 것.
저자는 "집의 크기나 값어치보다는 어떻게 마음먹고 사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척도"라며 "이중환이 찾던 이상향은 없지만 사람들이 소유욕을 버리고 산과 물에 다가선다면 그곳이 좋은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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