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代辯人? 代便人?

입력 2004-11-18 12:16:33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에서 발언권을 얻어 단상에 올라갔을 때 국민들은 첫머리에서 으례 "존경하는 국회의장님" "존경하는 동료의원 여러분"이란 소릴 듣게된다. 누굴 비방하거나 옆길로 새어서 그 발언을 제지해야 할 때에도 국회의장은 꼭 "존경하는 홍길동 의원!"하고 존경 자(字)를 붙여서 부른다. 하나도 존경하지 않아도, 앞에 꼭 존경 자(字)를 넣는 것은 국회의 존엄성을 지키고, 정쟁의 국회에서 끊임없이 자제력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7대(代) 첫 정기국회는 아예 "존경"이란 단어를 까먹어 버렸다. 대정부질문은 "무식'꼴통"에 "사법쿠데타" "관습헌법은 히틀러 이론" 등등의 극언까지로 치달아 버렸다. 근묵자 흑(近墨者黑)이요 근주자 적(近朱者赤)이다. 먹물옆에 있으면 저절로 검게 물들고, 도장밥도 자꾸 만지면 손바닥이 벌겋게 된다는 것이니 국회개혁을 장담했던 초선의원들이 새바람은커녕 오히려 검게, 붉게 물들어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선 아무래도 '해학'이 제1의 덕목인 것같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과 정치적 식견까지 갖추고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터. 이 세가지 다 못갖출 때, 유머감각 하나 만이라도 있다면 이런 난장판은 면하지 않겠는가 해서다. 정치에서 해학이 넘치는 '촌철살인'의 비판은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준다.

"제 이름은 지미 카터입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케리 후보 찬조연사로 나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한 인사말이다. 이 서두의 한마디 조크가 대회장을 웃음과 박수와 "아자!"로 뒤덮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고(故) 레이건 전 대통령.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황급히 병원으로 실려가던 때, 그가 아내에게 던진 조크- "여보, 피하는 걸 깜박 잊었어". 이 한마디는 정치해학의 백미(白眉)로 기록된다.

이 난장판 국회, 우리에게도 해학은 있었다. 꼭 1년전,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우루루 민주당을 뛰쳐나가 딴살림 차리면서 SK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민주당의 유종필 대변인이 꼬집은 이 표현은 참으로 기막힌 해학이다. "우리당(민주당)은 우리당(신당)이 가져간 우리당(민주당) 경리장부 일체 반환을 촉구했으나 우리당(신당)은 못들은 척하고 있다."

해학의 재주꾼은 또 있었다. 민노당의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 국감장에서 맛깔스런 해학을 제조했다. "법은 만인(萬人)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만명에게만 평등한 것 같다."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언의 인(人)자 하나를 명(名)자로 바꿔 '비리정치인 솜방망이 처벌'을 비꼰 이 한마디에 사법부인들 무릎 안칠 도리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의 저질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대변인이 꼽혀 왔다. 해학과 위트, 언어의 향기가 풍겨나는 성명'논평은 간데 없고 상대방 씹어대기, 악취나는 막말제조를 능사로 한 탓이다. 이들 여야 대변인이 지난 봄 여성대변인들로 바뀐이후 막말이 점입가경임을 본다. "근묵자 흑(近墨者黑)"-187명 초선들의 막말경쟁은 정치판 출세의 방편이라는 이 '대변인'에게서 배운 것 같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순방외교길에 오른 지난 12일 악담같은 논평을 냈다. "노 대통령 없으면 나라가 조용하니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 이 독설에 여당의 김현미 대변인은 "저주를 거두라"는 독설로 받아쳤다.

"퍼포먼스나 이벤트가 아닌 논리로 승부하겠다"던 두 여성의 대변경쟁은 악담(惡談) 경쟁, 독기(毒氣)싸움이라해도 틀리지 않다.전여옥 대변인의 발언-(탄핵심판을 앞둔 '몰래 만남'에 대해) "강금실 장관과 문재인 전 수석은 불륜관계인지 불순관계인지 설명해야…"(2004년 3월 21일), "(노 대통령)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공개 모욕은 자살교사죄에 해당"(3월19일). 열린 우리당 김현미 대변인도 더 하면 더 했지 못함이 없다."여고시절 새마음 봉사단 발대식의 추억인데, 그 때 난 선녀(박근혜)가 하강하는 줄 알았다" "박근혜는 유신의 파트너"(2004년 7월 22일), "정수장학회는 장물장학회"(7월 28일), "동아'조선은 친일흥신소"(9월 21일).

불혹(不惑)을 넘긴 두 여성대변인이 꽈배기 공장 딸들인지 알순 없으되 꼬여도 너무 배배 꼬였다. TV뉴스를 보다가 두사람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는 시청자가 의외로 많다. 바라건대 해학과 해악(害惡)을 구분하는 분별력을 좀 키워야 겠다. 그런 말장난은 그들에겐 '카타르시스'지만, 국민들에겐 '스트레스'다. 두사람의 악담경쟁에서 '대변인제 폐지론'의 정당성을 확인한다. 아이들이 배울라.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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