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의 사람들

입력 2004-11-12 08:46:11

2천500년전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제자들이 활동하던 이 시대는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불릴 만큼 새로운 사회를 갈망한 다양한 사상들의 각축장이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사상적 격변기에서 살아남아 중국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단연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사상과 행적이었다.

유학은 거의 전시대에 걸쳐 국교로 대접받았고 동아시아를 수천년간 사로잡았다.

공자의 제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3천명이라고도 하고, 72명 혹은 77명이라고도 한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인자(仁者)도 있고, 현자(賢者)도 있고, 오합지졸도 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 제자들의 모습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위정자가 본 제자와 스승 공자가 본 제자와 일반 사람이 본 제자의 모습은 같지 않다.

당대 위정자들과 일반 사람들이 현명하고 능력있는 제자라고 평가했어도, 공자가 보기에는 무능하고 어질지 못한 제자일 수 있다.

안연(顔淵)은 누가 뭐래도 공자의 수제자였다.

하지만 당대의 위정자들에게 안연은 현실에 눈이 어두운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마천은 이런 안연을 두고 천리마에 붙은 파리에 비유했다.

파리도 천리마에 붙어 있으면 천리를 간다.

천리마는 공자요, 파리는 안연이다.

가난뱅이에 불과했던 안연이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났기에 비로소 그 빛을 발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자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천리마를 천리마답게 만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단지 공자의 제자로 배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스승의 버팀목이 되고, 위로자와 교사의 역할을 했다.

"공자는 의지가 흔들릴 때는 자로를 곁에 두었고, 예복이 잘 꾸며지지 않을 때는 공서화를 곁에 두었고, 예절이 숙달되지 않았을 때는 자공을 옆에 두었고, 언어가 소통되지 않을 때는 재여를 옆에 두었다.

옛 일과 현실이 헷갈릴 때는 안연을 옆에 두었고, 자잘한 것들을 조절할 때는 염백우를 옆에 두었다.

"'시자'(尸子) '산견제서문휘집'(散見諸書文彙輯)"

'공문의 사람들'은 '논어'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 내용을 토대로 공자 제자들의 면면을 소개한 책이다.

안연, 자로, 자공, 재여, 자하 등 모두 29명의 특징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저자는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공자와 제자들의 삶을 다양한 캐릭터 중심으로 접근했다.

저자에 따르면 공자의 수제자 안연은 공자의 평가와는 달리 현대적 안목에서 본다면 다소 문제의 여지가 있다.

공자의 말을 한번도 거스르지 않았다고 하는 안연이 심각한 '예스맨' 혹은 '몰주체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용기가 출중하면서도 정의를 추구했던 자로(子路)를 스승 공자에게 '노'(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제자로 본다.

비록 공자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장 칭송받았던 자공(子貢)은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공자의 교육 방식을 다양한 계층과 신분을 망라하는 평등교육과 제자들의 성격과 능력에 따른 맞춤형 교육, 지식을 위주로 하지않고 참된 인간 교육을 중시하는 태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의 교육 방식은 참된 교사의 전형을 보여주며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하나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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