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거북선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

입력 2004-11-09 10:50:17

KBS 방송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회를 거듭하면서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증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는 낯선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와 인생역정이 흥미를 끌기도 한다.

드라마 내용이야 어쨌든 이순신이 우리 민족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성싶다. 이순신의 신화와 전설이 곧 거북선의 신화와 전설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순신의 거북선. 하지만 이 거북선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실체를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거북선의 신화와 진실을 살펴본다.

◇거북선은 1층 구조다(?)

명종 이후 조선의 주력 군선인 판옥선을 개량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데엔 이설이 없다. 그러나 판옥선을 어떻게 개량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거북선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은 '이 충무공 전서(1795년 편찬)'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간략할 뿐만 아니라 정조 때의 거북선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임진왜란과는 200여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배적인 견해는 거북선 1층 구조설이다. 노를 젓는 공간과 화포를 쏘며 전투를 벌이는 공간이 동일하다는 것.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을 비롯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거북선은 모두 1층 구조설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이런 구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2층 구조의 판옥선을 개량해 거북선을 만들면서 2층 갑판을 제거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충무공 전서'에 실려 있는 거북선 그림을 볼 때, 2층 갑판 위에 포를 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거북선 1층 구조설은 노를 젓는 공간과 포를 쏘는 전투공간이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순간적인 배의 이동과 재빠른 발포가 승패를 가르는 실전 상황에서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 2층 구조다(?)

거북선 상체에 대한 1층 구조설과 2층 구조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2004년 8월 미국 뉴욕에서 채색 거북선 그림이 처음 소개돼 주목을 받았다. 미국 조지아대학 연구팀이 탄소동위원소 분석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1640년대로 나타났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든 지 5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따라서 새로 발견된 채색 거북선 그림이 '이 충무공 전서'에 수록된 거북선보다 훨씬 더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가깝다고 추정할 수 있다.

모두 4척의 거북선이 그려진 채색 거북선 그림에서 특징은 판옥선 상체 1층 부분을 덮은 뚜껑이 상당히 높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종래 생각했던 것처럼 2층 구조를 갖출 수 없을 만큼 낮게 덮여 있지 않고, 충분히 포와 활을 쏘고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전투공간의 확보가 가능한 구조다.

더욱이 맨 앞쪽 거북선에는 열어젖힌 문 안으로 대포를 장착하고, 무언가 작업을 벌이는 전투원이 보인다. 분명히 노 젓는 공간 위의 2층이다. 새로 발견된 채색 거북선 그림은 이순신의 거북선이 지금까지 지배적 인식과는 달리 2층 구조였을 가능성을 한층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거북선의 신화와 진실(?)

거북선은 조선 수군 최고의 전투함이었을까.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40여년 전 전통 군선을 개선해 더 크고 튼튼하며 기동성이 좋은 판옥선을 개발했다. 또 고려 말 이후 발전시켜 온 대포 등 선진 화약무기를 이 판옥선에 장착했다. 대형 화약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왜의 수군에 비해 조선 수군은 월등히 뛰어난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왜의 수군에게 기습적 접근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조선 수군은 백전백승할 수 있는 여건이었던 셈이다. 원균이 이끌던 조선수군이 대패한 것도 왜의 수군에게 기습공격을 허용함으로써 근접전에 말려들었던 탓이다.

거북선의 장점은 왜 수군의 특기인 근접전에서 나타난다. 덮개로 덮여 있는 거북선에는 왜군이 뛰어들지 못한다. 이런 장점을 활용, 거북선은 돌격선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막힌 공간에서 무기를 장착하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기동성과 화력은 판옥선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다만 왜 수군의 전열을 흩어놓는데 효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판옥선을 약간만 개량해도 거북선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임진왜란 동안 3, 4척의 거북선만 제작했다는 분석이다. 구태여 많은 수의 거북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북선이 나라를 구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란 신화는 식민사관의 왜곡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선시대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해온 일본인 학자들은 이순신과 거북선만을 군신(軍神)과 신비의 군선(軍船)으로 추앙하고, 조선의 선진 선박제조 및 화포 기술 등은 폄하했다.

'불멸의 이순신'과 '거북선 신화'는 역사적 돌연변이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이 쌓아온 저력이 밑거름이 되어 피어오른 민족적 긍지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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