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점심시간

입력 2004-11-08 14:43:49

'공무원도 밥은 먹어야지. 아무리 공직이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고 허구한 날 점심 굶어가며 민원인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어야 하느냐. 공무원 위장은 시도 때도 없이 밥먹어도 견디는 무쇠가 아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점심시간에는 민원업무를 보지 않습니다'는 플래카드를 내 걸어놓고 대민업무를 거부하고 있는 전국 42개 지자체 공무원들의 항변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공무원도 웰빙시대를 사는'인간'이란 관점으로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무슨 소리냐'며 징계조치 요구에 나서고 있다. 행자부 조사로는 250개 지자체 중 47개 지자체 공무원들이 오후 6시까지 정상근무를 않고 5시에 제멋대로 조퇴해버렸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민원처리 거부도 42개 지역에 달했다. '공무원노동조합'의 분위기로 보면 조기퇴근'민원거부는 더 늘어날 전망이고 공직자의 윤리를 내세운 행자부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 행자부와 지자체 공직자단체 간의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나 씹으며 프로야구 구경하듯 속편한 관전자로만 있기가 어렵다. 당장 먹고살기 바빠서 점심시간에나 짬을 내 민원을 봐야하는 서민'기업인들은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게 된다. 꼭히 행자부 편을 들자는 것은 아니나 조기퇴근 시비에 대해서는 옛 우리 선조 공직자들의 범례를 돌아보자는 충고를 드린다.

실록들을 보면 조선왕조 시대에도 일부 공직자들은 무단 조기퇴근을 했다. 당시 공직자들의 근무시간은 해가 긴 봄'여름에는 묘시에 출근하여 유시에 퇴근하고 해가 짧은 가을'겨울에는 진시에 출근해 신시에 퇴근했다.

휴일도 일년 통틀어 20여일밖에 안돼 인구로 보나 경제규모로 보나 사실상 요즘처럼 공직 일거리가 많지도 않던 시대였음에도 공직자의 복무시간은 꽤 길었던 셈이다.

따라서 자연히 할일이 적다보니 조기퇴근도 하고 아예 일거리 없는 날엔 결근해 버리는 일이 잦았고 왕권은 기강을 잡기 위해 결근한 공직자는 태형 10대, 조퇴'무단이석은 태형 50대로 다스렸다고 한다.

형량으로 보면 조기퇴근하고 50대 맞느니 아예 결근해 버리고 10대 맞는게 나아 무단결근을 조장한 모순이 있었지만 왕조시대의 공직자 근무기강 잡기는 제법 무서운 데가 있었다. 이번 행자부의 징계조치 요구가 어느만큼 효력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공무원 노동조합'이 끝까지 조직 힘으로 버티고 지자체장이나 의회가 눈치나 보게되면 엄포로 끝날 조짐이 크다.

점심시간 민원업무 거부 경우 역시 교대근무제를 운용한다 해도 공직자의 건강관리라는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국민이 태평한 나라일수록 제몸 돌보지 않는 공직자가 많이 나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려 본다면 공무원쪽이 다시 재고해야 할 일이다.

중국 하(夏)나라의 '우'라는 관리의 공복자세를 예로 들면서 민원거부에 나선 공직자들에게 대민봉사나 공직자의 본분과 희생의 덕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것을 권고드린다.

'우'라는 관리는 '식사를 할때 백성이 민원을 하소하러 오면 입안에 씹고 있던 음식을 뱉어내고 번번이 뛰어나가 민원을 경청했는데 한 번 식사에 열 번을 뱉어내고 뛰어나가면서도 안색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공직자가 아니어도 존경과 긍지는 봉사와 희생에서 비롯된다. 그 희생이 재물이든 시간이든 내 건강이든…공직자 여러분의 재고를 당부드린다.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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