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기둥이 굵은 한옥의 널찍한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인 학동들. 그 앞자리에 근엄한 표정으로 길쭉한 회초리를 들고 제자들이 목소리를 합하여 천자문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지긋이 눈을 감고있는 훈장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서당(書堂).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2일 칠곡군에 남아있는 서당들을 찾아 나섰다. 현재 잔존하고 있는 서당은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 위치한 사양서당(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과 석적면 중리의 화산서당(花山書堂-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 두 곳뿐.
◇ 화산서당
6개월 만에 다시 찾아간 화산서당은 더욱 쇠락한 모습이다. 칠곡군에서 가장 급속한 도시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석적면 중리 한가운데 위치한 화산서당은 인동 장씨 문중 소유다. 1989년 5월29일 경북도문화재 자료로 지정됐지만 현재의 형색을 보면 문화재라기보다는 흉가로 방치된 느낌이다.
선뜻 마당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기가 움츠러질 정도로 풍광이 을씨년스럽다. 서당 주변은 급속히 신도심지로 추진되고 있다. 수년전 구획정리가 추진됐지만 화산서당은 제외됐다. 그 바람에 서당은 주변지역보다 1m정도 움푹 꺼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게다가 담벼락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주변지역은 잡초밭으로 변했다. 서당옆에 붙어있는 관리사의 상태는 더욱 심하다. 건물내 문짝들도 누군가 모두 떼내어 갔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기둥과 마루, 지붕뿐이다. 그나마 힘겹게 버티고 있는 듯한 건물조차도 곧 붕괴될 것 같다. 화산서당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화산서당의 이전은 10여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당초 이전을 하려던 성곡리 주민들의 반대로 한차례 무산됐고, 작년 말에 다시 석적면 반계리로 이전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주민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결국 화산서당은 행정기관에서도, 문중에서도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 사양서당
지천면 신리 43의 1 야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안개 속에 휩싸인 사양서당은 자태가 그윽하다. 다행히 화산서당보다는 옛 자취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사양서당도 온전할 리가 없다. 담벼락의 한쪽이 허물어져 가고 주변은 논으로 둘러싸여 압박당하고 있는 꼴이다.
사양서당은 지난 1985년 8월5일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됐다. 지난 1993년에 4천500만원을 들여 보수를 한 뒤 매년 조금씩 보수공사를 해오고 있으나 여전히 쇠락한 모습을 지울 길 없다.
당시엔 큰 규모의 서당이었지만 1868년 고종 5년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철거됐다. 현재는 강당으로 사용하던 경회당만 남아있다. 그나마 사양서당은 정식 관리인은 아니지만 돌보는 이가 있어 다행이다. 서당 뒤편 주택에 살고 있는 이수연(58)씨가 틈틈이 관리하고 있다. 이씨는 향인들이 서당을 세우고 업적을 기려 배향하고있는 석담(石潭) 이윤우(1569∼1634)선생의 후손이다. 이씨는 26년전 이곳에 정착한 후 농사일을 하며 서당을 보살피고 있다. 이씨는 "처음에 왔을 때는 거의 폐허상태였다"고 회상한다.
"그동안 보수를 한답시고 대학교수들이 많이 다녀가긴 했지만 공법을 몰라 해체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라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다행히 사양서당은 유지보수의 손길이 미치고 있으나 여전히 일반인들은 관심조차 없다. 그냥 잊혀져가는 문화재의 단상일 뿐이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사진: 사양서당 지킴이 이수연씨는 사양서당의 재보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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