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찰 8암자' 용이 되어 승천
구룡산은 해발 740m로 창녕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산행은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에서 시작해 정상으로 곧장 올라가 청룡암자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기암괴석을 타고 오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 북편으로 오솔길(5분)을 따라가면 굴뜸이 나오는데 100여 명이 기거할 수 있는 바위밑 공간이 있고 그곳 바위에서 먹을 수 있는 샘이 있다.
지형상으로 보면 물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곳이다.
다시 정상에서 북편으로 보면 저멀리 고암면 감리 마을이 보이며 구룡산 능선 북편에는 오색찬란한 단풍이 깊게 물들어 있다.
정상에서 서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용선대 방향으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잘 되어 있으며 하산 400m쯤에서 구룡산 정상을 바라보면 장엄한 산세에 천하절경이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용선대에서 석가여래좌상을 보고 관룡사로 내려오면 약 3시간 정도 걸려 1일 나들이 코스로는 적격인 셈.
구룡산은 소나무(홍송)와 잡목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숲속 그늘에서 산행을 할 수 있어 솔내음과 함께 삼림욕을 하면서 등산을 하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구룡산에 오른다는 배종대(54·창원시 토월동)씨는 '구룡산에 취하고 반했다'고 했다.
창녕의 진산이라면 보통 화왕산을 꼽아 구룡산은 화왕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경치나 산세로 보면 오히려 구룡산이 더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구룡산은 산의 이름에 걸맞게 용(龍)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산지명 자체에도 아홉 개의 바위가 용머리와 같다하여 구룡산으로 불려졌다고 구전되며 언제부터인가 관룡산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는데 관룡사 사적지에 보면 구룡산으로 나와 있다.
구룡산에는 예부터 1사찰 8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관룡사 사적지에는 관룡사, 청룡암, 극락암, 흑룡암, 황룡암, 령은암, 동암으로 1사찰 6암자로 기록돼 있어 확인할 길은 없다.
이와 함께 석가여래좌상이 있는 용선대는 피안으로 가는 배, 반야용선을 찾아가는 길이다.
가을 산을 물들이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눈썹같이 작은 잎들이 화려한 금빛을 뽑아내는 낙엽송이다.
용선대는 관룡사의 명부전과 요사채 사이에 있다.
숲길을 따라 서쪽으로 15분쯤 가면 산세가 급한 능선의 우뚝함 암봉에 석가여래좌상(보물295호)이 관룡사를 굽어보며 연화좌대에 앉아 있다.
반야용선은 반야의 지혜로 사바의 고해를 건너 열반으로 간다는 배로 용이 이끌며 선장은 부처님이다.
용산대에서 발 아래 아스라한 사바세계와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줄기들을 둘러보면 배멀미와 같은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보면 숨이 막힐 정도다.
어느 부처님이 이처럼 장엄한 법당에 앉아 있을까. 아침해가 뜨면 동향한 돌부처는 햇살을 받아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고 온몸에 생기가 돋아 곧 손을 내밀 듯 생동감이 넘친다.
창녕 사람들은 이곳 용선대에서 매년 1월 1일 해맞이를 하고 있다.
배바우 산악회가 주관이 되어 해맞이를 하고 산악회원들은 떡국을 준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새해 새 아침을 열고 한해의 힘찬 발걸음을 내달린다.
또 동짓달에는 입시생 부모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예부터 용선대 석가여래좌상을 이 지역사람들은 팥죽 부처님이라고 불렀다.
청룡사(대구 달성군 가창면)의 원조스님은 관룡사 주지스님이 동짓날 동자승에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라고 해 동자승이 팥죽을 가지고 부처님에게 가자 이미 부처님 입가에 팥죽이 묻어 있어 그때부터 팥죽부처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이런 전설로 인해 동짓날이 가까워지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치성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룡사는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 산자락들이 모여 이룬 아늑한 터에 솔숲, 대숲과 어울려 자리잡았다.
전설에 따르면 관룡사를 창건할 당시 화왕산 삼지에서 용 아홉 마리가 하늘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여 관룡사라 했다고 한다.
1733년 작성된 사적기에는 관룡사가 349년 창건됐으며 이는 1610년대 약사전을 수리할 때 들보에서 영화오년기유(永和五年己酉)라는 글이 나온 것을 근거로 한다.
고구려에 승려가 처음 들어온 372년(정사에서 불교전래의 시초)보다 23년 앞선다.
이에 따르면 관룡사는 가야국의 사찰로 지리산 칠불사처럼 불교의 가야시대 해상전래설을 따르는 것이다.
약사전(보물146호)은 사방 1칸의 작은 법당인데 집채의 간살이(기둥 사이의 간격)에 비해 지붕폭이 2배 가까이 되는 특이한 비례를 갖고 있다.
주심포식 맞배집의 큰 지붕은 단정한 외목도리가 뻗어나오면서 떠받치고 있어 작은 건물이지만 아주 장중해 보인다.
유례가 없는 양식이어서 가야양식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약사전의 앉은 자리는 구룡산의 용머리바위 자하맥의 끝이라고 전해지며 약사전 석불좌상(보물519호)에 대해서도 스님들은 인도양식에 가깝다고 믿는 반면 전문가들은 고려중엽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본다.
관룡사 사적지의 1사찰 관룡사와 6암자 중 현재 구룡산 9부능선에 자리잡은 청룡암은 70년대에 새로 창건했고 오로지 극락암만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이 극락암은 옥천저수지에서 약 500m 가량 가면 갈림길에서 신촌마을∼극락교를 지나 동쪽으로 걸어서 30분 정도 오르면 닿을 수 있으며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
■ 옥천사지
창녕읍 옥천리 산 293의 절터는 옥천마을에서 관룡사로 오르는 산허리 길 옆에 있는 800평 정도의 분지이다.
본지의 한 가운데 커다란 주춧돌이 있어 옥천사의 옛터임을 말해준다.
아래쪽 언덕은 이끼 낀 돌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은데 당시의 석축이 높은 곳은 4m 가량 남아 있으며 보조축대도 축석하부에 일부 남아 있다.
주춧돌이 흩어져 있는 옥천사지에는 석재를 비롯하여 연화대석 기단석 일부와 석등의 하대석들이 남아 있다.
유물이 없어 전체 건물 규모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남아 있는 건물 기초의 축조기법으로 보아 대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옥천사는 관룡사 못지않은 큰 사찰로 건립연대는 삼국시대인 듯하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하는데 이도 확실치 않다.
'동국여지승람' 창녕현 기록에 따르면 고려말 신돈이 이곳에서 출생하고 자라 이 절에서 수양하였고 그의 어머니가 이곳 사비였다고 전한다.
신돈이 역적으로 몰려 주살되자 옥천사도 이때 폐사됐으며 훗날 사람들이 다시 지으려다 완성되기 전에 신돈의 일로 반대가 많아 헐어버렸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공민왕14년(1365년)부터 20년(1371년)까지 6년 동안 정권을 장악했던 신돈은 시골의 승려 출신으로 왕의 스승이 돼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조선건국 이후에 편찬된 '고려사'에는 대역죄인, 요사한 승려 등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가 집권한 시기에는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
권문세족을 억누르며 일반인을 위해서 개혁을 추진한 그는 당시에 '성인'이라고도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용서받지 못할 인간으로 기록된 까닭이 무엇일까?
역사 속으로 더 묻혀지기 전에 신돈의 사상과 일대기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 먹을거리
창녕읍 옥천리는 민박 등이 가능하며 가을송이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옥천저수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소금강식당(055-521-2305)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음식 메뉴도 조금씩 바뀌지만 한우 쇠고기를 엄선하여 잘 숙성된 갈비살 맛이 뛰어나다.
인근 주변에서 농사를 지어 공급되고 있는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표고버섯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버섯전골 등을 맛볼 수 있다.
그밖에 쌈밥, 닭도리탕, 송이백숙 등이 이곳의 토속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의 창녕군청 문화공보과 055)530-2231.
■ 가는길
구마고속도로 창녕IC∼국도 5호선을 따라 10㎞지점의 계성, 신당에서 구 국도를 따라가면 계성교가 나오고, 왼쪽으로 계성천을 타고 4㎞쯤 가면 옥천저수지가 나온다.
창녕·조기환기자 ckha@imaeil.com사진: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는 구룡산 전경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