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보는 즐거움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 중에서도 미인을 보는 즐거움은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리라.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머리 좋고 일 잘하는 사람과 얼굴·몸매가 뛰어난 사람 중 어느 쪽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최근 우리 사회를 찬찬히 뜯어보면 후자 쪽을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요즘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최고의 단어 중 하나가 '몸'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누드 열풍에 성형미인, 얼짱, 몸짱 신드롬에 이르기까지, 몸은 가장 매혹적인 상품이자 즐거운 게임이 됐다.
이제 몸은 보이고 감상하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와 권력을 위한 최고의 자본(資本)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계란형 얼굴, 가는 눈매, 큰 눈, 초승달 같은 눈썹, 붉은 입술, 희고 깨끗한 치열,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길고 날씬한 다리…. 누구나 이런 몇 가지 항목들을 떠올리겠지만 정확하게 얘기하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사전을 뒤져봐도 미인에 관한 객관적인 조건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런 결과는 일본 고쿠가쿠인대 중국인 교수 장징에게 미인이라는 수수께끼를 푼 책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됐다.
◇ 4천년간의 미인관 변화 추적
하지만 그의 신간 '미녀란 무엇인가'는 미인이 될 수 있는 비법 등을 설파한 다른 미인 관련 책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오히려 쌍꺼풀 수술로 성형미인을 꿈꾸는 여성들한테는 꽤 불편한 책이다.
저자는 미인의 이미지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집단적 망상에 가깝다고 서슴없이 외친다.
또 아름다움에 객관적인 표준이 있으며, 심지어 이를 계량화할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믿음과 절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국과 일본에서 미인관이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4천 년의 기간을 추적했다.
그의 추적에 따르면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중국과 일본의 미인관에서 공통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같은 몽골로이드에 유교문화권이라는 한지붕 아래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에도시대에 그려진 미인은 키가 컸지만, 청대의 미인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몸집이 작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희고 깨끗한 치아가 미모의 조건으로 꼽혔지만, 일본 헤이안시대에는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소위 흑치 화장법이 유행했다.
" 양국 남성들의 미인을 고르는 입맛이 제각각인 증거는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시대에 따른 미인관의 변화는 중국과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한 미녀배우인 정윤희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김태희를 보고 미인의 기준을 정한다면, 70년대에는 약간 통통하며 덕스러운 이미지가 미인이었지만, 요즘은 마른 체형과 작은 얼굴의 서구적 윤곽이 미인의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옛날 여성들은 현대 여성들에 비해 먹는 즐거움만큼은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날씬한 체형이 아름답다는 관념은 의외일 정도로 역사가 짧다.
다이어트의 발상지인 유럽에서조차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가녀린 미인'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살 빼는 고통에 짓눌리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역사는 돌고 도는 법, 풍만한 신체가 대접받는 시대가 다시 올지 누가 아는가"라고 적었다.
◇ '풍만한 신체' 대접받을 수도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미의식에 스며든 다양한 권력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민담 속의 꼬리 달린 여우나 귀신은 왜 아름다운 여성으로만 둔갑할까. 저자는 부계중심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를 풀이한다.
주로 남성 독자들을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추녀나 남자로 변신하는 꼬리 달린 여우를 상상해보라. 그 이야기가 온전히 전래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흰 피부에 대해 열광하는 것도 남성중심 사회와 무관치 않다.
여성들의 활동이 규방 내로 제한되는 바람에 피부가 극도로 창백해졌단다.
모계사회에서는 구릿빛 피부가 여성들에게 최고의 덕목이었다.
중국과 일본 당대 최고의 미녀들과 함께 환상의 여행을 하고 있으면 한가지 종착점에 이르게 된다.
'아름다움의 문제는 개인의 감정이 얽힌 인식이다.
따라서 오늘의 미인이 과거나 내일의 미인이 될 수 없다.
' '제 눈에 안경'이라는 다소 식상한 표현이 이 책에서는 귀하게 다가온다.
가느다란 실눈에 풍만한 작은 키의 여자친구가 유독 자신의 눈에만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500쪽 분량의 책을 덮자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잠언 한마디가 생각난다.
"촛불이 꺼졌을 때, 모든 여성은 아름답다.
"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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