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독재' 국제 학술대회

입력 2004-10-25 14:34:09

"독재 뒤에'독재지지 대중'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했던 독일 나치스를 비롯해 20세기 전체주의 국가 국민들은 그 독재체제와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에는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라는 데서 '대중독재' 이론은 출발한다.

즉 국가의 폭력과 강제는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일 뿐 그 아래에는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고 자발적 동원을 만들어내는 정교한 장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재의 이면에는 이 독재를 용인 또는 지지한 대중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대중독재' 이론이다.

국제적으로 새 연구 패러다임으로 평가받는 대중독재론을 토대로 20세기 독재체제의 지배 메커니즘과 그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일으킨 반향 등을 천착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려 주목을 끈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29일부터 31일까지 한양대 대학원 화상회의실에서 여는 '대중독재, 동의의 생산과 유통(Mass Dictatorship and Consensus-Building)' 국제학술회의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10개국 2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벌인다.

'대중독재' 동의 창출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핵심 주제인 이번 학술대회는 '정치종교' '영웅숭배와 미디어 리프리젠테이션' '인종주의 민족주의 반유태주의' 등을 주제로 3개 분과로 나눠 진행된다.

에밀리오 젠틸레 로마대학 교수는 주최 측에 미리 보내온 논문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에서의 정치의 신성화'를 통해 "지도자의 연설에서부터 간단없이 개최된 대중 집회, 온갖 유형의 의례와 상징, 거대한 전시회와 건축, 도시계획에 이르는 독재체제의 헤게모니 공세는 새 세상의 비전을 경로로 대중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것이 파시스트적 인간형이든 아니면 사회주의적 인간형이든 정치종교로서 작동한 독재체제의 목표는 '인류학적 혁명'이었다"며 "정치종교로 작동한 20세기 독재체제의 이러한 인류학적 혁명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독재체제와 대중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미하일 빌트 독일 함부르크 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고삐 풀린 세대-제 3제국 치안본부의 지도부 분석' 논문을 통해 "나치당의 안보와 치안 임무를 맡은 통합기관인 '제국치안본부'는 민족공동체의 개념을 축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제도를 합치시킬 수 있었고, 어떠한 법적인 한계도 넘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고 또 그것을 정당화했다"고 밝혔다.

펠릭스 티흐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역사연구소 소장은 '폴란드 공산당의 유대인 정책'에서 "1968년 폴란드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반유대주의 캠페인이나 심지어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현재의 폴란드 사회에서 엿보이는 반유대주의적 기운들은 결과적으로 '유대인이 없는 폴란드'라는 전쟁 전 극우파의 정치적 슬로건을 실현한 것"이라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공산당의 대외용 슬로건이었을 뿐, 그 공식 슬로건 밑에서 실제로 작동했던 힘의 정치는 저열한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였다"고 지적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사진: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대중독재론을 토대로 20세기 독재체제와 대중들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국제학술회의가 한양대에서 열린다. 사진은 나치스 전당대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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