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모르는 관리가 볼기친다"

입력 2004-10-25 11:36:24

수도이전 위헌판결이 나던날 마침 서울에 가 있었다.

오후쯤인가 모 언론사 간부를 지낸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느닷없이 대구 내려오는대로 "신나게 한잔 하자"는거다.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갑자기 신나게 마시자느냐"고 물었더니 "헌재가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모여서 한잔 안 할 수 있느냐"는거다.

이튿날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뒷머리가 반백이 다되신 기사분이 행선지를 대자마자 갑자기 꼭 들어보란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 나이 일흔인데……."

옮겨 적을것도 없이 조목조목 현정권 하는 일 들이 못마땅한 이유들을 해설했다. 택시안에서 20여분간 열띤 반정부 항변을 듣고가면서 어제 한잔 하자고 전화한 분은 왜 노 정권이 곤경에 처하게 된 상황을 소주로 축배들고 칠순이 다된 노 기사분은 처음 보는 승객에게 반정부적 의견을 주입 내지는 동조를 확인하려 드는 것일까를 잠시 생각해봤다.

그들은 기원전 로마시대의 초기법률은 관습법이었다거나 로마 최초 최고(最古)의 성문법인 십이동판법(12銅板法)도 관습법과 판례법을 담았다는 관습법론 같은 법 논리는 알 처지도, 따질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헌재 위헌 판결을 지지한 68%의 민심처럼 평범한 민초의 천심에서 자연스레 우러난 일종의 조건반사적인 심정을 드러냈을 뿐이라 여겨진다.

조건반사라는 표현이 딱히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를테면 TV에 누구 얼굴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채널을 돌려버리게 되더라거나 극단적인 특정세력들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생감 씹은 기분이 된다는 반사적 반응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계속 개혁이라는 좋은 이름으로 주어진 자극(조건)들이 축배나 반정시위 모금운동 같은 거부적인 반사를 일으키도록 해 왔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이번 헌재판결이후 집권층의 대응 자세에서 그 이유의 하나가 보인다.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나오자마자 '듣도 보도 못하던 법'이라며 헌재 재판관들을 무식한 보수세력인양 비난하고 더 나아가 '개혁에 저항하는 선출되지 않은 세력'으로까지 몰아 '탄핵 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가 그런 예다. 무엇이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자는 혹독히 공격하는 과격성에 넌더리가 난 반발이 노정권에 대한 민심의 부정적 조건반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헌재 재판관을 '탄핵하고' '손봐야겠다'는 태도는 반칙을 해서 반칙패 당하는 것은 반칙자 스스로 자초한 당연한 결론인데도 심판에 불복하고 심판을 두들겨 패려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내가 잘못할때는 눈감아 주고 남이 잘못할때만 옐로카드 꺼내 주는 경기만 하고 싶어 하는 꼴이다. 특히 정권의 최정점이 법률가 출신인 이 정권이 헌법기관의 정당한 판결에까지 공격적인 저항자세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곧 '법이 무시되는 곳에 독재와 전제가 싹튼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오만이다.

마지막 비판세력인 언론계에도 '까불지 마라'는 메시지와 함께 언론개혁이란 이름의 가위로 '삼손의 머리카락 가르기'가 시작되고 있다.

이미 언론의 충고도 그들 귀에는 수구의 목소리로 들리는 마당에 더 이상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세울 세력도 없다시피 돼 간다. 모든 조직과 계층을 무릎꿇리고 제압하려드는 듯한 기세속에 이 정권이 막무가내 밀어붙이는 일들에 그나마 합법적 브레이크를 걸어줄 헌법기관이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조차 이제는 위협받고 있는 판이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보여줘야 나와 다른 집단이나 개인은 누구나 반개혁으로 몰아 내치고 갈라버리는 반(反)화합, 반(反)통일(국론) 체질을 뜯어고쳐 줄 수 있을 것인가.

속담에 '법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 부린다'는 말이 있다. 사전대로라면 "(관습헌법도 모를만큼)법실력 없고 일에 자신이 없으면서 공연히 애매한 사람(헌재 재판관'언론) 볼기치는 것(탄핵'손 봐주기)으로 위세부려 얼버무리려 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번 위헌판결 파문은 수도이전 문제 그 자체보다 개혁만능세력이 법치국가의 준법기준을 흔드는 위험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는데 있다고 봐야 한다. 개혁정권은 무엇보다 먼저 겸허해야 한다. 바람으로 벗기려 드는 오기서린 개혁보다는 햇볕으로 벗게 만드는 포용의 개혁을 지향하라. 그러면 그토록 갈망하는 재집권의 길은 저절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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