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저무는 가을 문경새재 나들이

입력 2004-10-23 10:35:01

파란하늘은 더욱 깊어가고 산야는 가을풍치를 완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넓은 들녘에 황금물결이 일렁거리며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 보인다.

초록 잎이 누렇고 빨갛게 변색되어 가고 과수원에는 사과, 배 등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성급히 옷을 벗은 앙상한 감나무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우르르 떨어질 것만 같다.

주흘산 정상을 향하여 활활 타오르는 아름답고 웅장한 단풍축제를 상상만 하여도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새재는 산자수려한 곳이라 계절 따라 변화가 무상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갈 때마다 나의 마음은 웰빙의 감정으로 충만하다.

일행이 모두 노년이라 주흘산 앞자락인 고사리 수양관에서 하향하는 것이 쉽다.

우리는 하향하는데 원근각처에서 몰려온 상행하는 관객들의 행렬이 끝이 없는데 모두 다 초면인데도 여러 계곡과 골짜기와 산능선을 따라서 울긋불긋 아름답게 펼쳐진 빛깔의 대향연에 취해 동심이 되었는지 서로를 반기며 미소짓고 손을 흔들며 모두 환호하니 단풍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휴양림 곁에 자리한 가건물 주막에는 도토리묵, 옥수수, 고구마, 동동주 등으로 간식을 즐기는 작은 시장마당 같이 웅성거린다.

조령관(제3관문)의 좌측에 향나무 향기가 물신 풍기는 약수터가 있다.

모두 줄을 서서 표주박으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구슬땀이 식어지고 온몸이 상쾌함을 느낀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전나무와 낙엽송, 도토리 나무숲으로 몰려온 다람쥐 가족이 겨울을 준비하는 분주함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관광객 중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자리를 옮길 줄 모른다.

상록수의 대표격인 노송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싱싱하게 서 있다.

문경새재의 명물인 박달나무가 몇 년 전만 해도 멀찍멀찍 생존을 유지하더니 이제는 어린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군락을 이루어 자연보호운동 효력인 듯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차량출입이 통제된 비포장 도로에 맨발로 걸어보면 제2의 심장이라는 발 마사지는 만점이다.

좌우로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청각을 자극하여 즐겁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은 행인들을 흥겹게 하는 숲속의 합창이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국화와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은 우리를 반기며 바라보니 정겹다.

조곡관(제2관문)을 지나니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소로가 나타난다.

"어사또 출두요." 한 친구가 소리치며 어깨에 힘주어 뚜벅뚜벅 촌극도 했다.

길 옆에 세워진 문경새재 민요 비를 보고 평소에 흥이 많은 나는 즉흥적으로 노래를 선창하니 지나가던 행인들도 어깨춤을 덩실덩실하며 아리랑 축제마당이 됐다.

하행을 하다보면 원추형의 자연석에 '산불됴심' 음각이 되어 있다.

옛날에도 산화에 경각심을 일깨웠던 것 같다.

옛날 주막집 모습이 잘 보존된 주막마루에 걸터앉아 험산 준령 길, 허기진 행인들이 갈증과 허기를 면했던 것처럼 음식을 나누었다

고려시대부터 공사 여행자의 숙박과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던 원터에 들러보니 옛 관리들과 한양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전해져서 문경(聞慶)으로 고장의 명칭이 된 것 같다.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 인계하던 교구정에 들러 관찰사의 위상은 어떠했으며 경상감사의 도임 행차도 거창했으리라 그려보았다.

태조 왕건 촬영장에 들러 대하드라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진왜란시 새재의 천혜의 요새를 이용하지 못한 신립 장군의 작전실패로 유한이 담긴 주흘관(제1관문)을 나오면 감정은 늘 씁쓸하다.

시간관계상 여궁폭포와 해국사는 근처에 있지만 오늘은 보지 않고 지나쳤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한가롭게 자연 속을 거닐고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올 때마다 새재의 절경에 감탄하며 에덴의 일부분이라 생각된다.

흠뻑 젖은 옷을 벗고 샤워 후 따뜻한 보양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개운하다.

또 구수한 토종 오리탕으로 배를 채우니 만족스럽다.

오늘 새재 길(해발 500m, 길이 12km) 코스는 역사를 익히고 심신을 단련시켰으며 묵은 스트레스를 해소했으니 웰빙의 목적을 이루었다.전경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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