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有錢無罪

입력 2004-10-20 19:00:43

흉년이 든 어느날 고을 현감 진식(陳寔)이 책을 읽고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 들보위에 납짝 엎드렸다. 잠시 후 현감은 아들 손자를 불러앉히고는 훈계를 했다. "사람의 본성이 어디 원래부터 나쁜 것이랴. 나쁜 행실이 습관이 되고, 그게 본성이 되면 나쁜 짓을 해도 그게 나쁜 짓인지조차 모르게 되느니. 예를 들어 지금 들보위에 있는 군자(君子)도 그런 것이야." 놀란 도둑은 뛰어내려 죄를 청했고 현감은 입을 것 먹을 것을 주어 돌려보냈다. 중국 후한말에 있은 양상군자(梁上君子)의 고사(故事)다.

○…"패물을 팔고 땅을 사서 불린 알토란 같은 내 돈입니다" 이순자씨가 남편 비자금 관리의혹 때문에 검찰에 소환됐을 때 그녀가 울먹이며 한 말이다. 그러나 올여름, 그녀는 200억원을 전두환씨의 추징금 대납형식으로 결국 게워냈다. 비슷한 때 독일의 한 로또 당첨자가 130억원의 당첨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해 우리나라에서까지 화제가 됐다. 50대의 이 신사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갑작스런 부(富)에 두려움을 느껴 당첨 접수를 포기했으나 좋은 일에 쓰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우리의 통속적 사고방식이라면 그는 "돌았다"고 해야할 사람이다.

○…전두환씨의 둘째 아들 재용씨를 항소심이 어제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그는 자신의 재산 167억원에 대해 "결혼축의금으로 받은 종잣돈 16억원을 죽은 외할아버지가 불려서 돌려준 것"이라는 기발한 해명으로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같은 날 온 신문엔 40대 '절망범죄' 급증이란 기사가 깔렸다. 백수로 전락한 40대 가장들이 줄줄이 '양상군자'가 되어 담높은 집에 가고 있다는 암담한 얘기였다. 같은 시각, 같은 40대의 전재용씨는 교도소를 풀려났다. 군자(君子)라고 다같은 군자가 아니었다.

○…임대료를 못낸 영구임대 아파트 주민 600여가구가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월 3~4만원의 임대료, 6~7만원의 관리비도 못내는 입주자가 자꾸 늘고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국회 법사위의 국감자료는 검찰이 2000년 이후 추징시효(3년)가 지나 떼인 추징금이 무려 4천600억원이나 됨을 밝히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두사람의 돈도 곧 그 속에 포함될 터이다. 이 돈들이 있다면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돈 몇만원에 자존심 굽힐 일도 없을텐데….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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