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평 남짓한 공간. 벽에는 50, 60년대 흑백사진 대여섯 장이 장식하고 있다.
논두렁 가에 옹기종기 모여 옛 문화재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비롯해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교사, 낡은 강의실 등을 담은 사진이었다.
마치 옛날 초등학교 교실을 연상케 하는 풍경들로 채워져 있다.
빛 바랜 전화기와 낡은 풍금은 세월의 풍상(風霜)을 말하고 있었다.
이를 찬찬히 살펴본 노신사의 눈시울은 어느덧 붉어졌다.
"꼭 50년 전이었지. 초등학교 4년때 동무들의 고사리 손을 잡고 배움터에 나올 적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이순(耳順)이 다됐구먼."
지난 9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1층. 윤광주(59)씨는 경주박물관학교 개교 50주년 기념특별전 '아! 우리 어린이 경주박물관학교'(~11월21일) 전시실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는 50년전 '경주박물관학교' 2대 교장이었던 고(故) 윤경렬씨의 큰아들이자, 1기 졸업생이다.
입학 당시 사용하던 풍금과 전화기, 환등기 등을 보며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4년 10월10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에는 학생모집 포스터를 보고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지금은 50년이 된 경주 박물관 학교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9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전국 각지 박물관 학교의 효시가 이렇게 생겨난 것 이다.
그 당시는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로 시작했다.
향토사학가 윤경렬씨와 진홍섭(80·초대 교장) 전(前) 국립경주박물관장 등 뜻있는 인사들은 전후 황폐한 시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문화재 사랑'에 몸을 던져 박물관학교를 만들었다.
'문은 항상 열려있다.
입학도 퇴학도 어린이들의 자유로 한다, 어떠한 명목으로도 돈을 받지 않는다, 수업시 존댓말을 쓰기로 한다'는 학교 운영규칙도 넣었다.
당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학원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는다'는 항목도 추가했다.
윤씨는 "마땅한 교실이 없었고, 교육자료도 절대 부족해 진홍섭 선생님이 매주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미국 공보원의 환등기와 영사기를 빌려 박물관 학교를 운영했다"고 했다.
또 "단순히 역사공부나 유적지 답사뿐 아니라 사진촬영, 만화영화 상영, 음악감상, 그리기, 글짓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호기심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적 박물관학교의 가르침대로 지금도 문화재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박물관학교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시절, 마땅한 공간이 없어 관장실에서 수업을 하다 경주여중, 박물관 금관고, 경주도서관 등지를 전전했다.
개교 1주년에 윤경렬씨가 작사하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교가를 제정하고, 학생증을 발급함으로써 기반을 다져갔다.
박물관학교 진홍섭 초대 교장과 윤경렬씨는 57년 11월부터 2년 동안 매일신문에 고분시대, 석기시대로 나누어 '지상박물관학교'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59년부터 3년 동안에는 교실조차 없어 야외에서 현장수업만 해야 했다.
62년 경주시립도서관에 둥지를 틀면서 학교 이름을 '경주어린이향토학교'로 개명했고, 82년 중·고등부를 신설하면서 '경주박물관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88년 제34기 입학식에는 2천여명의 학생들이 몰려 박물관 학교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지난 9일 '아! 우리 어린이 경주박물관학교' 개막식에는 진홍섭 초대 교장을 비롯해 김원주(76), 김광해(60), 김해규(60), 김윤근(60), 이홍렬(39), 최원호(39), 박연화(39·여)씨 등 역대 졸업생 20여명과 초등학교 신입생 등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대를 뛰어넘는 문화재의 관심과 사랑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날 개막식 공연에는 78년 박물관학교를 졸업한 이홍렬씨가 대금을, 2대 윤경렬 교장의 딸인 순희(동국대 국악과 교수)씨가 가야금을 각각 연주했다.
70대 졸업생과 10대 신입생들이 어우러져 '교가'를 합창할 때는 여기저기서 손수건이 눈으로 옮겨졌다.
개막식을 마친 뒤 전시장을 돌며 옛날 포스터와 사진, 자료 등을 둘러보던 나이 든 졸업생들은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김해규 경주 월성중 교장은 "참 어려운 시절에 박물관학교 수업을 받았는데 지금은 환경이 크게 좋아졌다"며 "박물관학교가 100년, 200년 지속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홍렬씨는 "초등학교때 우리 문화와 역사를 배운 경험이 너무 소중해 졸업생 모두 그때 그 추억을 잊지 못한다"며 "경주박물관학교 졸업생 상당수는 지금도 경주의 '신라문화동인회'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문화재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원주씨는 경주박물관회 고문, 김광해씨는 신라문화동인회 회장으로, 김해규·김윤근·손윤락씨는 경주 각 학교에서, 이홍렬씨는 문화재정보센터 소장으로 지역 사회의 문화유산을 보듬고 있다.
대금과 가야금을 연주하고, 박물관과 향토문화 모임을 갖고, 후학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가르치면서…. 경주박물관학교는 반세기 동안 이렇게 문화재 사랑과 지킴이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