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데리다와 해체주의

입력 2004-10-11 19:49:52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사유의 근간인 철학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류가 야만이 아닌 문명을 누리는 까닭은 역사와 철학에 힘입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식과 정보로만 쏠리고 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정보나 지식이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하더라도 반드시 현명하고 지혜로운 건 아니며, '드러난 현상'을 모으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학문, 특히 철학의 허물어짐은 결국 우리의 삶도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떨어뜨릴는지 모른다.

◇ 더구나 새로운 철학은 전혀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열면서, 때로는 기존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으로 세상을 바꿔놓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적인 발전 논리를 재구성, 그 바깥으로 통하는 길을 트기도 한다. 1930년 알제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데리다는 30대 중반에 해체주의를 들고 나와 철학의 새 물꼬를 텄던 20세기의 우뚝한 철학자다.

◇ 췌장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가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당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요, 우리 시대의 지적인 삶을 대표하는 주요 인물"이라고 애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주류 철학계에서 다소 떨어진 이단아였지만, 그의 해체주의는 오늘날 세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게 사실이다.

◇ 그는 플라톤 이래 2000년 철학사에 전혀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거대한 사조를 이루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바로 그의 해체론에 의해 촉발되고, 20세기 후반부터 문학'예술'사회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이의 사유' '다르게 생각하기' 열풍을 일으켰었다. 더구나 그의 해체론 앞에서 과거의 이론들은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버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 과거나 당대의 이론들을 죽이면서 새로운 영향력을 뿌렸던 데리다의 죽음과 함께 그의 해체주의 역시 언젠가는 해체돼야 할는지 모른다. 수많은 적대자들을 만들기도 했던 그의 해체주의가 진부해 보이기 시작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을 밀어내는 또 다른 사조가 바람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데리다 이후의 새로운 철학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삶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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