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수기자의 일일 해양경찰체험

입력 2004-10-09 08:56:04

덕자(德者)는 산을 좋아하고 치자(治者)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대장부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불러온다.

굳이 따지자면 이같은 큰 포부는 없지만 늘 마음속으로만 동경해왔던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며칠째 포항해양경찰서에 막무가내로 졸라 겨우 승선 허락을 받아냈다.

'1일 해양경찰'로 입문하기 위해서다.

지난 5일 오후 1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포항해양경찰서 전용부두인 송도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리 없다.

"장시간에 걸쳐 배를 타본 적이 없는데…" . 걱정부터 앞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정이 있다며 돌아갈까. 수십차례 고민을 거듭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으로 부두로 향했다.

체험을 하는 배가 소형경비정 만은 아니길 기도하면서.

그러나 이같은 바람도 잠시 뿐. 배를 보자 거의 기절할 정도다.

P-83정. 경찰승선 인원 겨우 5, 6명의 25t 소형경비정이다.

큰 파도에 낙엽처럼 떠다닌다는 그 배다

한형구 정장(艇長)에게 "이 배 타고 갑니까"하고 은근슬쩍 물었더니 "왜 멀미합니까. 그러면 고생 꽤나 할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갑자기 두려움이 확 밀려온다.

"그렇게 겁나면 뭐하러 왔습니까. 걱정마쇼. 부두에서 떨어진 해상에 '한강 8호'가 있는데 거기까지 이 배로 이동합니다".

태풍도 없고 풍랑주의보도 없었지만 파도 높이가 3, 4m는 됨직하다.

경비정으로 1시간 뱃길을 달리자 멀리 1천833t급의 경비구난함 한강8호가 눈에 들어온다.

한강8호에는 분당 100드럼의 물을 110m 분사할 수 있는 선박소화시설과 해양오염방제능력, 여기다 유사시에 대응하기 위해 분당 3천300발을 발사하는 발칸포 1문이 장착돼 있다.

대단한 위용이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바다 위의 치안센터' 답다.

계류를 위해 30분의 실랑이 끝에 겨우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에 오르자 한강 8호 강홍렬 함장이 "좋은 경험하고 바다를 지키는 우리의 애환을 정확하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한강8호에선 해양경찰을 지원한 교육생들이 승선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강8호는 포항을 출발, 경주 감포 앞 바다를 거쳐 울진원전 부근까지 총연장 682마일 구역에서 바다치안을 담당하며, 주로 영해침범 외국어선 단속과 우리어선의 조업환경보호, 해상에서의 약탈행위, 불법어로행위 등을 담당한다.

이날 첫번째 맡은 역할은 전문지식이 전혀 요구되지 않는 배 안팎의 청소. 꾀병이 아니라 배멀미가 시작되는지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달래가며 선실과 조타실의 청소를 시작한다

오현옥 부장이 "뱃일이 체질이네. 이참에 직업을 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농을 건넨다.

이윽고 밤이 되자 제철을 맞은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하나 둘 불빛을 밝힌다.

500여척이 불을 밝힌 바다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가 긴장을 해야하는 시간대. 해상범죄의 90%가 이시간대에 발생한다.

저녁식사 후 나머지 잔일을 거들고 있는데 갑자기 비상벨이 두어번 울린다.

선박충돌사고가 발생해 전대원에게 비상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채낚기 어선끼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다 충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사고선박에 접근,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시속 45노트(73㎞)의 단정(短艇)이 내려졌다.

은근슬쩍 단정에 올라 타자 오현옥 부장이 "파도가 높아 잘못하면 허리 부러진다"며 말린다.

아쉬운 마음으로 한발짝 물러섰다.

단정은 높은 파도로 곧 침몰할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였다를 반복한다.

단정에 옮겨탄 요원들이 한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거의가 초죽음 상태. 채낚기 어선들끼리 충돌사고가 일어났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단다.

선박만 조금 파손된 정도다.

사고로 인해 한시간 동안 지체했다.

이참에 오현옥 부장과 김대생(기관내연원) 경위가 뭍에서 온 손님을 위해 솜씨를 뽐내며 오징어채낚기를 드리운다.

금세 30여마리의 오징어가 잡혔다.

오 부장은 "한창 오징어가 많을 때는 동해바다가 물 반 오징어 반 이었지요. 낚시를 내리면 오징어가 하도 많아 오징어 머리를 맞춰 기절(?)시켜 건져 잡는 수도 있어요"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징어도 덜 잡히고 출항경비도 예전의 3, 4배에 이르러 어민들이 2중고, 3중고를 겪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휴식시간도 잠시. 다시 단정을 기중기에 매달고 출동 후의 갑판청소 등 뒤처리를 해야한다.

한강 8호는 다시 후포항 쪽으로 전진했다.

6일 새벽 3시쯤 또다시 대기명령이 떨어진다.

중국어선 12척이 남하하고 있다는 긴급타전이다.

30분쯤 지나자 중국어선들이 꼬리를 물고 남하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어선들은 북한과 맺은 어업협정으로 북한해역에서 조업을 마치고 동해를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우리영해를 벗어나서 북쪽으로 오가야 하지만 최근 기름값 등 출어경비가 올라 인도적인 차원에서 근접통과를 허용하고 있다.

중국어선들이 우리영해에서 조업을 하지 않을 경우와 밀수·밀입국자의 운반 등 범법사실만 없으면 무해통항(無害通航)은 허락하고 있다.

중국선단은 한강8호의 인접지역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한참 근접 경계를 하던 한강8호는 울산해양경비정에 이들이 몇시쯤 통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 뒤 다시 울진 쪽으로 향한다.

오전 7시30분 강홍렬 함장과 식탁에 마주앉았다.

"바다는 무한의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자원보고라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이 바다를 지키고 깨끗이 이용하면 바다도 반드시 무한의 자원을 되돌려 줄 것입니다.

"

포항·이채수기자 cslee@imaeil.com

▨해양경찰은

"해상치안 우리가 책임진다.

"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해양경찰 신임순경 204기 훈련생들 12명이 한강8호에서 승선훈련을 받았다.

승선훈련과정을 통해 훈련생들은 항해술과 함정장비운용법, 바다 위 당직근무 요령 등 해양경찰관으로서 습득해야할 기본적인 지식과 선배 경찰관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게된다.

또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물과 친숙해지며 배에서 활동하는 능력을 숙지하게 된다.

며칠간 배멀미와 낮밤이 뒤바뀌는 훈련으로 초췌한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설렘으로 눈빛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지금까지 해양경찰 지원자의 대부분은 수산고등학교 출신이거나 해변지역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지원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해양경찰은 치안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일반 경찰들과 일치하지만 업무파트가 바다와 육지라는 점에서 세부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다.

△항해 △기관 △외국어 특기(중국어·일어·영어) △잠수(인명구조 등) 등 주로 4개부문으로 나눠 교육생을 모집한다.

이중 잠수의 경우 대부분 해병대와 UDT 등 군특수부대 출신들이 중용된다.

지난달 20일 울진군 후포면 동쪽 5마일 해상에서 부산선적 134t급 트롤어선 제3영신호와 포항선적 9.77t급 오징어 채낚기 어선 부광호의 충돌 사고당시 잠수해서 사체를 수습한 것도 이들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이들을 인솔한 경찰종합학교 서동일(경위)교수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상의 치안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 우리 바다의 자원관리와 치안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포항·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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