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이제는 돈싸움인가

입력 2004-10-04 13:34:17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때 묻히실 무덤조차 준비된게 없었다.

사흘만에 부활하신 돌무덤도 사실은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이 죽을때 묻히려고 마련해둔 무덤이었다.

2천년전인 그 당시도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돌무덤을 미리 사두던 시절로 부자 요셉은 힘들게 구해둔 무덤을 가난한 예수를 위해 내준 것이다.

요즘 세태로 치면 비싼 공원 묘지터나 명당터를 미리 사둔 여유 있는 사람이 장례 치를 형편도 안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묘터를 내준셈이다.

지난 추석 너도나도 성묫길을 다녀왔지만 내 묘터를 힘든 이웃에게 내줄 만큼의 나눔은 부자라고 아무나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빈부의 차가 커지고 있는 힘든 세태일수록 예수님의 돌무덤 얘기 같은 가진 사람들의 선행을 보기가 점점 더 어렵다.

일찍이 성서(聖書)도 부자들을 꾸짖거나 벌주는 비유를 많이 했지만 이웃의 불행과 비참함을 외면하지 않은 부자에게는 엄청 우호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구약 창세기에도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땅부자에다 양 7천마리, 암나귀 500마리를 거느리는 등 3대(代)에 걸쳐 거부(巨富)가 되도록 계속 팍팍 밀어주신다.

물론 세사람 모두 한결같이 이웃에게 베풀고 양떼와 암나귀도 정직한 방법으로 늘리며 부를 축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지 '나자로'가 식탁 아래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조차 아깝게 여긴 이기적인 부자를 징벌하는 루가복음의 얘기와는 반대되는 깨우침이다.

지난 추석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부모, 우리형제, 내친척에게는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를 주고 나눴다.

그러나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닌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과연 얼마만큼 베풀고 나누었던가를 돌아보면 아브라함형(型) 부자들도 적잖았겠지만 나자로를 외면한 이기적 부자형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석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새삼 성서까지 들먹이며 한가위 선물 나눈 얘기를 꺼낸 것은 어느 몰락한 야당국회의원 등이 집권중인 부자 정치권(?)을 향해 "돈 떼먹고도 잠이 오느냐"는 볼썽사나운 데모를 하고 있어서다.

시위 당사자들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부자의 식탁 밑에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나자로보다도 더 형편이 딱한 듯한데 그들이 '돈 떼먹은 부자'로 지목한 청와대나 여당쪽은 법적 무책임을 내건채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들이 '떼먹었다'고 주장하는 돈은 대충 30억원 안팎.

지난번 대통령 선거때 선거홍보비 등은 친정격인 민주당 돈으로 다 써놓고 당선되니까 몰락한 친정 버리고 새로운 여당 만들어 분가해 나간 뒤 그때 빚은 나몰라라 하는 건 이기적인 몰염치가 아니냐는게 야당측이 내건 시비의 초점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도의적으로 갚아야 할 빚을 떼먹고도 발뻗고 자는 건지 애시당초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도 갚아줄 빚이 아닌지는 알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가진 쪽이 어려운 쪽을 돕는다는 것은 법률같은 것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나눠가지겠다는 사람됨의 도리나 양식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면 정치권의 돈다툼 역시 머리 속의 법보다는 사람의 가슴을 잣대와 기준으로 하루라도 빨리 시비를 가려야 합당할 것이다.

더구나 이번 30억 빚시비는 그들끼리의 사적인 금전다툼으로만 끝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장바닥에 떠벌려진 시비가 된 이상 국민들의 시선에 치사스런 돈싸움으로만 비쳐져 인기없는 정치권이 세상인심까지 사납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아서는 안될 일이다.

사랑과 나눔의 본보기가 절실해지고 있는 각박한 세태에 명색 지도층임을 자임하는 정치권이 길거리에서 '돈 떼먹었다'는 시비를 떠벌리는 모습은 지친 민심과 식어가는 인심만이 더 거칠게 할 뿐이다.

과거사니 보안법이니 정치싸움도 모자라 이제는 돈싸움까지 끌고들어와 갈길 바쁜 금쪽같은 21세기를 언제까지 허송세월할 작정인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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