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소란스럽다.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아직 봉합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친일(親日) 과거청산 문제가 불거져 국론을 조각내고 있다.
또 한 쪽에서는 국가보안법 개폐를 놓고 피아가 서로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 판에 화폐개혁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국민들은 이쪽 저쪽에서 마구 옆구리를 찔린 모양 어리둥절하다.
어느 것 하나도 쉬 결단하기 어려운 난제들인데 이런 국가적 화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국민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가뜩이나 '헐떡이는 경제'를 등에 업고 시지프스처럼 오늘도 무거운 바위덩어리를 굴려 올려야하는 국민은 이제 혼란의 경지를 넘어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기야 참여정부는 '성장이냐 배분이냐'라는 고전적인 논쟁거리를 안고 출발했으니 어느 정도의 혼란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숨가쁜 세계화, 정보화 시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식기반 시대에 '옳다, 그르다' '이쪽이다 저쪽이다'는 방향싸움에 어찌 국민이 불안하지 않겠는가.
◇ 혼란이 곧 퇴보인가
그러나 모든 질서는 혼란에서부터 출발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혼란이 없었던 때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우리는 혼란에 익숙해져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근대화 단계에서 우리는 거의 혼란을 잊고 살았다.
그것은 '정치적인 독재'와 동행한 시기였다.
무(無)혼란, 즉 일사불란한 모습은 '잘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서 경제 기적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무혼란은 스스로 질서가 잡혀 혼란이 없어진 상태가 아닌, 어떤 힘에 의해 혼란이 덮여진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더욱 행운인 것은 서구에서 수 백년간 피와 혁명에 의해 정제(精製)된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대가없이 도입돼 당시 무혼란(?)상태의 사회와 접목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화학 공업, 수출, 저축, 산아제한, 심지어 가정의례까지 거의 말 한마디로 일사분란하게 처리됐다.
국민소득 1만달러는 이렇게 달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서는 곧 경제성장'이라는 등식에 아주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덮여진 상태의 무혼란, 스스로 뿌리내리지 못한 수입된 자본주의는 1만달러의 껍질을 벗어던지려는 지금 한국경제에 커다란 적이 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저항이 곧 민주세력이고, 돈이 곧 자본주의라는 천민적(賤民的) 사고가 알게 모르게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계층 간, 세대 간, 중앙과 지방 간, 심지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도 격차가 벌어지는 분리(divided) 사회로 가고있으니 갈등과 혼란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 나부터 '창조적 파괴'를
그렇다고 혼란이 곧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는 혼란의 용광로 속에서 질서를 찾아야한다.
사회적 담론만 무성해서는 안된다.
혼란은 합의(consensus)를 향해 수렴돼야한다.
정(正)과 반(反)에서 합(合)을 모색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창조적 파괴'의 길이다.
비교적 반미(反美)계열인 세계적인 지성 기 소르망도 미국이 갖고있는 '파괴 정신'에는 탄복을 한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코넬 대학의 경제학자인 알프레드 칸(Khan)은 지미 카터 대통령을 설득했다.
모든 미국인들이 보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작업은 사기업의 독점을 폐지해야만 가능했다.
자유경쟁체제를 옹호하는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미국의 하늘은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빈정대면서 미국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기다렸다.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틀림없이 안전이 희생될 것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았고 가격은 파격적으로 낮아졌다.
항공편 공급은 늘어났다.
마침내 이스턴, 팬 암, TWA 등 거대 항공사가 파산했다.
유럽이라면 기존 항공사들의 종말은 거대한 충격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정부가 이를 살리려고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의 소멸은 애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항공사에게 자리를 내주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세계 하늘을 석권하게된 밑거름이다.
(기 소르망 '메이드 인 USA')
그렇다.
파괴 정신만 있다면 혼란이 왜 두려운가.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지 못하겠다면 섣불리 주장하지 마라. 자존심을 앞세운 싸움은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나를 부수고 남을 받아들여라. 파괴의 고통없이 질서는 창조되지 않는다.
진실은 대체로 중간에 있는 법이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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