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불황..."문 열면 되레 손해"
경주 중앙상가에서 10여년 간 가죽제품 장사를 해 온 김정식(50)씨는 불황을 견디다 못해 2개월 전 문을 닫고 말았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게 낫다"며 천직으로 여긴 업을 그만 둔 것. 김씨는 상가를 떠나며 "도심을 살려야 지역경제가 산다.
죽어가는 상가를 살려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했다.
경주의 1번지로 통하는 중앙상가 경기가 최악이다.
잔뜩 기대했던 추석 대목마저 불경기 한파에 매출이 뚝 떨어져 영세상인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의류 점포 주인들은 "추석 대목은 다소 나을 것으로 기대하고 좋은 상품들을 잔뜩 가져다가 헐값에 내놨지만 매출은 바닥을 긴다"고 한숨지었다.
불황이 강타한 경주 시가지에는 최근 일년 새 전체 상가의 30%에 달하는 800여개 점포가 문을 닫았거나 주인이 바뀌었고, 현재 200여개 점포가 문을 닫기로 결심하고 전세금 반환을 청구해 놓은 실정이다.
이대로 간다면 연말까지 문을 닫는 점포는 1천개를 웃돌 전망이다.
상인들은 "지난 40, 50년간 장사를 하면서 경주시에 적잖은 세금을 내 지역발전에 말없이 이바지해왔다"며 "경주시가 상가 활성화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은 데다 불경기마저 수년째 지속되면서 결국 수백명의 상인들이 쪽박을 차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며 한탄했다.
특히 옛 경주시청 청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노동, 노서, 황오, 성동, 성건동이 갈수록 침체의 늪속으로 빠져들어 지난 일년간 점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직장을 잃은 종업원만 800여명에 이른다.
시가지 한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최근 신라백화점 부도에 이어 크고 작은 유통업체와 음식점이 하루에도 두어개씩 문을 닫고 있다"며 "상가별로 남아도는 점포수가 급증세에 있다"고 밝혔다.
이곳의 불황은 시청사가 북천 다리 건너편으로 이전한 뒤부터 급속히 찾아왔다.
연간 4천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던 청사가 사라진 뒤 매일 바쁘게 운행하던 시내버스마저 함께 자취를 감췄다.
상가 중심부에 있는 국민은행과 농협중앙회 경주시지부 관계자는 "노동동에 있던 시청사가 1년6개월 전 동천동으로 이전한 뒤부터 상가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예전 같으면 걱정도 안하던 소액 대출이자조차 갚지 못해 연체가 누적되고, 결국 법적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업주가 늘고 있다"고 했다.
또 경주여중 이전이 늦어지면서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마저 계획대로 안되고 있다.
당초 중앙로에서 경주여중까지 계획됐던 이 거리는 조흥은행 경주지점 앞 네거리에서 중단됐다.
게다가 경주시가 최근 사적지 보호를 이유로 노동, 노서 고분군 도로변 개인건물 소유자들에게 이 지역이 마치 내년 3월 시행에 들어갈 예정인 고도보존특별지구에 묶인 것처럼 호도한 뒤 사유지 매입을 위한 절차와 동의를 받고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상인 서정식(60.경주시 노동동)씨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규제되는 사유지 600만평만 잘 보존하고 그 외 지역은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개발해 균형이 맞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종오(51.경주시 노동동)씨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 허가된 건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안감을 조성할 경우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상가 주민들은 상가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대릉원 북문 개설 △금관 서봉총 관광자원화사업 △예술의 거리 조성 △경주음식점거리 조성 △소방도로 개설 및 숙박의 거리 조성 등을 제시했다.
김성수(62.경주지역발전협의회 수석부회장)씨는 "상가 주민들이 제안한 것만 당장 해결돼도 떠나는 점포 중 상당수가 되돌아올 수 있다"며 행정당국의 성의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고도보존특별법 운운하면서 주민을 불안케 한 행위는 진상을 파악해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며 "침체된 상가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 중에 있으며, 곧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