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은행 대형화와 지역금융의 활로

입력 2004-09-22 14:02:29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시중자금이 은행권으로 쏠리고 있다고 한다.

또 은행을 중심으로 한 겸업화가 확산되면서 은행의 시장지배력이 커져 금융산업이 너무 은행중심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융기능의 은행권 집중은 금융산업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자금조달수단의 다양화나 투자자의 투자기회를 제한한다는 비판이다.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무보증 유가증권투자보다는 예금보장기능에 기초한 은행권 예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또한 은행권이 제2금융권에 비해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어 은행에 대한 신뢰성이 증대하고, 건전성과 수익성을 바탕으로 비은행금융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업무제휴 또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업무영역을 확대해온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권 간 자금흐름의 변동을 살펴보면 시중자금의 은행 집중은 시장에서 흔히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다소 다른 모습이 보인다.

수치적으로 보면 1998년 이후 금융구조조정 기간 중 예금 등 은행계정의 수신 비중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금전신탁 등 은행의 신탁계정 비중이 크게 축소되면서 은행 전체적으로는 비은행금융권으로부터 은행권으로의 순자금유입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오히려 금융권 간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의 모습에 더 가깝다.

즉, 1997년 은행권 수신비중이 64.6%, 비은행권 24.1%, 그리고 투자신탁 12.0% 수준이었는데, 2004년 상반기에도 비슷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판도가 은행 중심으로 기울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은행의 대형화와 종합금융그룹화 움직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은행권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은행들끼리 합병이 이루어지고 상위 은행의 시장점유도가 커졌다.

또 금융지주회사 또는 자회사 형태로 금융그룹을 형성하면서 보험, 펀드, 카드, 할부금융, 자산운용 등 거의 모든 금융분야로의 진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형화와 겸업화는 1990년대 이후 이웃 일본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도 계속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향후 우리나라 금융산업도 결국 대형금융그룹과 중소형 지역금융회사로 이원화되어 계층적 분업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경우 지방은행을 비롯한 상호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저축금융기관이나 지역에 기반을 둔 투신사 등 지역금융회사들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들이 대형화될수록 지역 중소형 기업금융 또는 소비자금융에서 상대적인 공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선진 연구들에서 밝히고 있다.

이러한 공백을 지역금융회사들이 효과적으로 메워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신용평가의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 중소기업들에 대한 신용조사 및 평가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금융의 수요기반을 넓히는 한편 지역 성장주도 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규모의 영세성을 극복하고 업계 전반의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 경쟁력이 취약한 금융회사들을 조기에 정리하거나 합병을 추진하고 유사업종의 조정과 통합을 포함하는 업종 간 합병도 추진함으로써 대형금융그룹과의 경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지역 정서상 합병이 어려운 경우 업무협력을 통한 서비스 다양화에서부터 온라인 제휴, 공동투자나 자본제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과 수준의 전략적 제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밀착 경영의 우위를 살려 대형금융그룹이 진출하기 어려운 부문에 특화하여 금융서비스를 전문화, 차별화함으로써 틈새시장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최근 몇몇 지방은행들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져 지역금융회사들이 활기를 되찾고 이와 더불어 지역경제의 성장엔진이 다시금 그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날을 꿈꾸어 본다. 정해왕·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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