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소리에 잠을 깬다. 어제 저녁, 선물로 준 목걸이 볼
펜을 목에 건 숙소 옆 건물의 소녀가 창을 향해 노래를 부
르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얼굴을 가리며 달아나 버린
다. 여행지에서 아이들과의 만남은 늘 낯가림과 다가섬의
연속이다.
티베트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서른
개의 볼펜을 준비했다. 여행을 하면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
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고 어린 시절을 항구
도시에서 보낸 아득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가끔 수업 대신 부두에 정박한 미
군들을 환영하러 나갔다.
우리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헬로와 기브 미'
를 연발하며 손을 흔들었고 미군들은 초콜릿이며 사탕따위
를 던져주었다. 그것은 너무나 달고 맛있었고 딱히 부두가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짓궂게 따라붙곤 했
다.
아마도 외국인들은 한국이라는 땅에는 거지들이 많다고
느꼈을 터이고 나이가 들면서 그것은 부끄러운 기억이 되
고 감추고 싶은 상흔이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걸인들을 만
날 때마다 늘 힘이 들었다. 병든 노약자들의 구걸은 외면하
기 어려웠지만 특히 아이들의 구걸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
가야 할 삶이나, 우리의 어린 날처럼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
을지 모른다는 우려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궁여지
책으로 돈이나 먹을 것이 아닌 볼펜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
을 택했지만 이것 또한 경제적 우월감이 가지는 천박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소녀는 빨간 볼을 더욱 붉히며 다시 나타난다. 계단 난간
을 붙들고 손짓 발짓으로 말을 걸자
재미있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다.
'깨끗한 땅'이라는 뜻을 지닌 티베트의 상징 포탈라(布達拉) 궁으로 향한다. 포탈라는 조캉 사원과 더불어 최고의 성지로 꼽히고 있
으며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송첸 캄포 왕이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건립했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된 것을 5대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몰아내고
재건하여 오늘 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포탈라는 정교합일(政敎合一)의 구조로 백궁(白宮)과 홍궁(紅宮)으로 나뉜다. 백궁은 세속의 정치를 담당하는 곳이며 홍궁은 성스러
운 종교를 관장하는 곳으로 속(俗) 위에 성(聖)이 있음을 상징하듯사원과 마찬가지로 정문은 폐쇄되어 있고 궁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평탄한 오르막이었지만 기압 차이 탓인지 숨이 턱에 닿았
다.
백궁 위에 홍궁이 위치하고 있다.궁 앞 도로 역시 오체투지와 코라를 도는 순례로 분주하다. 조캉100위안의 입장료, 아깝지는 않았지만 그 용도가 궁금했다. 출
입구에는 포탈라를 찾은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
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그는 티베트를 방문해서 티베트인들
의 자유를 요구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 역시 중국의 침
략을 묵인한 공범은 아닐까? 그와 악수를 하고 있는 중국 관리의 미소 속에서 괜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웃사이더일 수밖
에 없는 여행자의 속내가 편치 않기 때문이다.
벌써 익숙해져버린 야크 기름 등불을 따라 수많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고 한결같이 남루한 옷을 입은 가족이 1 각(角)짜리 지폐와 야
크 버터를 불상과 등불 앞에 놓고 절을 하고 있다.저들의 소망은 무엇이며 그 기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평생에 한번 라사를 찾아 나선 순례의 길이 어두워 보이는 것은 단지 좁고
복잡한 방들 때문만은 아니다. 13층의 중심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이다. 침실과 거실, 접견실,그의 체취가 묻어나는 용품들까지, 하지만 빈방이며 빈집이다.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오스트리아인 하인리히 하러와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발하던 어린 달라이 라마의 앳된 미소가 눈에 선하다.
7.8,9대 달라이 라마를 모신 불탑들이 있는 방을 따라 내려오면 무려 3천700kg의 금으로 입힌 5대 달라이 라마를 모신 방이 있다.
부처의 환생이라 믿는 달라이 라마에게 바치는 이 척박한 땅의 불심
에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999개의 방, 돌과 나무로만 지어진 13층
높이의 건물, 인간이 만든 위대한 불가사의 곳곳에 사진 촬영을 금
하는 팻말이 붙어 있고 감시 카메라마저 달려 있다. 그 감시 카메라
밑에서 공안들이 공양으로 바쳐진 지폐를 세어 포대에 넣고 있다.
아! 주인을 잃은 포탈라는 이미 무덤이다. 원색으로 화려하게 치
장한 포탈라의 그 어떠한 것도 여행자의 쓸쓸한 감상, 자유를 잃은
주검이 되고 만다.
층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창문을 통해 정문 앞 광장을 본다. 중국
의 오성기(五星旗)가 휘날리는 광장은 원래 연못이 있던 자리였다.
문화혁명 당시 포탈라 궁을 파괴하려던 홍위병들을 막았던 저우언
라이(周恩來)가 이 광장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들이 만들고자 했던 이념의 굴절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노불링카(羅布林)로 향한다.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으로'보석
공원'이라는 뜻의 노불링카는 그야말로 공원이다. 어둡고 침침한 포
탈라, 숲으로 둘러싸인 노불링카, 부처의 환생으로 받들어진 달라이
라마라 할지라도 어느 곳을 선호했을지는 분명하다.
젊은 연인들이 한적한 숲을 걷고 있다. 1959년 중국의 박해를 피
해 변장을 하고 이 평화로운 궁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달라이 라
마, 이후 일어난 민중봉기와 피의 진압, 노불링카의 이 슬픈 역사를
저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궁전의 뜰 한쪽 구석에 태양열 낡은 주전자는 파괴된 노불링카의 상흔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다.
노불링카 안에 있는 궁전 중 14대 달라이 라마가 새로 지었다는
탁텐 미규 포트랑(Takten Migyu Potrang)에는 그가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접견실과 명상실, 침실이 보존되어 있지만 주인의 사진 한 장 없는 빈집이다.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한 가족이 달라이 라마의 의자 앞에서 오체투
지를 하고 있다. 기혼녀를 의미하는 파스텔 색상의 앞치마를 두른
여자들은 아이의 머리를 숙여가며 절을 하고 아이의 바지 밖으로 엉덩이가 비어져 나온다.
살아있는 부처, 달라이 라마의 축복을 비는 불심은 여자들의 것이
다. 남자들은 그저 합장을 하고 물끄러미 바라다볼 뿐이다. 입구에
는 중국인이 기념품을 팔고, 밖에는 티베트 전통의상을 빌려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그늘에서 졸고 있다.
노불링카 맞은 편, 티베트 박물관은 굳게 잠겨 있다. 제 자리에 있어
야 할 것들을 박제로 만드는 박물관의 신화를 믿지 않는 탓에 애당초
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무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힘든 것은 단순히 기압 차이만은 아니다.
개방의 물결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을 향해 삐죽이 고개를 내
밀고 있는 건물들, 그 건물이 만드는 어두운 거리에 고독한 순례자의 오체투지가 이어지고 있다.
전태홍 자유기고가사진: 노불링카 사원안의 탁텐 미규 포트랑궁 전경.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