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간 존재 가운데 하나가 연탄일 것이다.
그렇지만 중·장년층이라면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불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거나 혹은 고기 한 점 올려놓고 소주 잔 기울이며 각박한 세상에 시린 마음을 데운 추억을 갖고 있다.
연탄불 하나로 견뎌낸, 추웠지만 사람들 사이의 정만큼은 훈훈했던 어느 해 겨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난방이나 취사 차원을 넘어 연탄불 주위는 서로의 마음을 열어놓는 공간이었다.
각계 인사 24명이 쓴 연탄에 관한 글을 묶은 '연탄'(문학동네). 연탄불 위의 고구마처럼 달콤하고 연탄가스처럼 알싸한 연탄 이야기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도, 그리고 세상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김지하·안도현 시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작가 신경숙·박민규씨, 배우 오지혜씨, 방송인 임백천씨 등이 제각기 살아온 인생을 풀어놓으며 연탄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치 끝이 아릴 만큼 슬프기도 하고 배시시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으면서 연탄불처럼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연탄의 해석학'이라는 글에서 유독한 가스를 피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하는 '독극물'인 연탄이 온기로 사람을 살린다는 형용 모순의 미학을 발견한다.
이어 "연탄이 곧 분단된 나라, 흩어진 겨레, 황량한 반도에 대해, 마치 '죽음 속에서의 살림의 불'처럼 차원이 다른 어떤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썼다.
시인은 연탄불을 통일을 향한 생명의 불꽃으로 해석한다.
김근태 장관은 70년대 수배를 받아 쫓기던 시절,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셨던 아찔한 기억을 털어놓는다.
안도현 시인은 '연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인. 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연탄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안 시인은 연탄불 가는 것이 일이었던 유년시절을 글에 담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씨는 '우리는 누구나 한 장의 연탄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작가는 감칠맛 나는 문체로 새벽마다 연탄을 갈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면서 겨울을 난 우리는 모두 연탄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는 어릴적 야구공 만한 작은 손으로 연탄을 나르다 연탄을 깨뜨렸던 기억과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연탄불에 구워 드시던 고구마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되새긴다.
소설가 이명랑씨는 어린 시절 행상을 하시던 부모님이 단속에 걸려 돌아오지 못한 어느 겨울밤의 공포를 녹여주던 연탄불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 책이 따뜻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책의 수익금은 전액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이사장 변형윤)에 보내져 저소득 가정과 북한에 연탄을 보내는 데 쓰인다.
이대현 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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