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 오래되고 헐어서 입지 못하게 된 옷가지. '넝마주이'= 넝마나 헌 종이를 주워 모으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어깨에 큰 대바구니를 둘러메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던 '넝마주이'를 기억하십니까.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요즘도 '현대판 넝마주이'라는 리어카 고물상이 많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근의 경제난을 반영하듯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방증입니다.
재활용품 수집상인 '역전 재활용센터'의 하경욱 사장의 도움으로 리어카 고물상 '부산 김씨'(56·포항시 북구 죽도동)를 만났습니다.
포항시 북구 용흥동 '역전 재활용센터' 앞.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부산 김씨를 만난 건 오후 7시쯤. 허름한 옷이 없어 낡은 등산복과 등산화에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잽싸게 리어카 손잡이부터 낚아챘다.
김씨는 "오늘은 리어카를 맡기고 천천히 물건만 찾으라"는 말에 순순히 리어카를 건네준다.
경북 영양이 고향인 김씨는 어릴 때부터 부산에서 생활한 탓에 이 바닥에서는 '부산 김씨'라 통한다.
리어카 고물상 경력은 3년. 일용직 근로자가 벌이가 낫지않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말끝을 흐린다.
"일감이 매일 있는것도 아니고 또 지병인 당뇨병 때문에…."
앞장 선 김씨를 따라 리어카를 끌고 제일 먼저 들어선 곳은 용흥동 자동차 부품 골목(칠성천 복개도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뒤다.
김씨가 이 가게 저 가게 앞을 기웃거리며 물건(재활용품)을 찾는다.
김씨가 찾는 재활용품이란 다름아닌 빈 종이박스와 고철이다.
헌옷, 빈병, 장판, 전선 등도 수거하지만 극히 드문 편.
어둠 속에서도 김씨는 가게 귀퉁이에 버려져있는 빈 박스들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박스를 해체하는 것 역시 능란하다.
해체한 박스를 차곡차곡 리어카에 싣는 것도 기술이다.
따라해봤지만 쉽지 않다.
부품상가를 지나면 역전~오거리 간 큰길이다.
가게는 물론 가정집들도 이미 박스나 신문지 등을 인도에 내놓은 터다.
리어카 고물상들이 가져가도록 놓아 둔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박스안에 재활용품이 아닌 쓰레기봉투에 넣어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김씨는 준비해 간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모아 내다버린 쓰레기봉투 속에 끼워 넣었다.
양심상 박스만 챙기고 쓰레기를 그냥 도로가에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김씨는 리어카에 빈 비닐봉지와 노끈, 공구를 담은 낡은 007가방 등을 항상 싣고 다닌다.
다음 코스는 남빈동 네거리 공구상가 쪽. 출발한 지 30여분이 지났지만 다른 리어카 고물상들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자기 구역'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우리가 돌고 있는 곳은 김씨 아저씨 구역입니까?"
"구역 같은 거 없어요. 하루밤 돌아다니면 5, 6명 정도는 만나지요. 종전에는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못 본 사람들도 많습니다.
"
김씨는 올해초보다 자신과 같은 리어카상들이 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중앙상가로 들어서 대형 쇼핑몰인 '프라이비트'앞에 도착하자 김씨가 바빠진다.
김씨를 따라 건물 뒤로 돌아가자 벌써 60대로 보이는 리어카 고물상 한 분이 쇼핑몰에서 나온 빈 박스를 챙긴 뒤다.
김씨는 "이곳은 빈 박스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며 "하지만 어느 때 나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수시로 와야한다"고 귀띔해준다.
'포항MBC 시네마' 뒷 골목은 쓰레기봉투에 담지않은 각종 생활쓰레기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혹시 돈이 되는 재활용 물건들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앙상가를 한 바퀴 돌고나자 리어카도 제법 무거워진다.
혼자 끌기에 다소 힘이 부칠 정도. 눈치를 챈 김씨가 같이 끌자고 했지만 기분좋게 거절했다.
어차피 리어카 고물상들의 삶의 무게를 체험하러 나온 길 아닌가.
중앙상가를 빠져나와 구 전신전화국 쪽으로 향하는 순간 한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몰래 버리고 있다.
현장적발. 참을 수 없다.
비닐봉지에서는 폐 비디오 테이프와 플라스틱 등 각종 생활쓰레기가 쏟아져나온다.
김씨는 "쓰레기 봉투값을 아끼려는지 요즘 들어 불법 쓰레기들이 더 많다"며 "심지어 리어카 고물상들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리는 예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밤 11시가 조금 못돼 리어카에는 박스가 제법 수북하다.
과연 이 정도 무게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7시쯤 전날 수거한 박스의 무게를 재기 위해 역전재활용센터에 도착하자 리어카나 유모차에 박스 등 각종 재활용품을 싣고 온 리어카상 3, 4명과 재활용센터 직원 2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김씨는 사무실 쇼파에 기대어 새우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하 사장이 도착하면서 저울질이 시작된다.
김씨가 지난 밤 수거한 재활용품을 실은 리어카가 저울대에 오르자 수치가 180kg을 가르킨다.
그러나 리어카 무게 55kg을 뺀 순수 재활용품은 125kg이다.
박스의 경우 kg당 단가가 50원으로 김씨가 받은 돈은 모두 6천800원. 허탈하다.
오후 7시부터 밤11시까지 4시간 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져 수거한 재활용품 값이 고작 6천800원이라니.
김씨는 "낮 1, 2번을 포함해 하루 2, 3번 정도 수거해 버는 돈이 하루 2만원이 안 될 때가 많다"며 "그나마 집 수리나 휴·폐업 가게를 만날 때면 대박이 나는 날"이라며 웃는다.
남씨(50) 아주머니와 개(犬)할머니(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다닐 때 항상 개를 데리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죽도시장 이씨(70) 할아버지 등도 한마디씩 거든다.
파출부를 하다 3년 전부터 일감이 없어 이 일에 나섰다는 남씨 아주머니는 "하루 1만원 벌이도 안된다"며 "대학 다니는 아들 등록금과 생활비가 가장 큰 고민"이란다.
아들의 부도로 2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이씨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 만나면 창피하지만 외손자와 친손자 2명의 학비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한숨짓는다.
"정치인들이 우리와 함께 단 하루 만이라도 현장 체험을 해 보았으면…."
어젯밤 부산김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말이 뱅뱅 돌며 귓가를 떠나지않는 하루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사진설명 1~2=지난 13일 밤 부산 김씨와 포항시 중심가 도로를 돌며 리어카로 빈 종이박스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있는 임성남기자.
3~4=역전재활용센터에서 전날밤 수거한 재활용품을 계근대에 올려 무게를 단 후 빈 박스를 리어카에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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