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고향 강원도 정선

입력 2004-09-17 10:48:29

정선아리랑은 다른 아리랑에 비해 훨씬 애처롭고 구슬프다. 처량하기까지 하다. 아리랑 가락이 원래 구슬프기는 하나 정선아리랑은 더욱 애달프게 들린다. 듣고 있노라면 괜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정선아리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우라지'다.

◇아우라지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아우라지 나루터. 정선아리랑이 생겨난 곳이다. 옛날 남한강 1천리 물길을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이 여기서 출발했다. 아우라지라는 말은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임계 방면에서 흘러온 골지천과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이 만나는 물길이다.

이렇게 어우러진 물길은 조양강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선을 적신 다음 영월에서 동강으로, 이후 다시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서울을 거쳐 강화도까지 달린다. 송천은 돌이 많아 거칠게 흐르고 골지천은 얌전하다. 그래서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하는데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말이 있다. 지난 태풍 루사와 메기 때 양수가 많아 홍수가 났다고 한다.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정자 한 채가 강을 굽어보듯 서 있다. 그 앞에는 떠나보낸 님을 기다리며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처녀상이 서 있다. 거기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었던 한 처녀총각의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옛날, 한 처녀가 강 건너 마을 총각과 사랑에 빠졌다. 가난했던 남자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떼배를 타고 나갔다가 굽이치는 여울에 유명을 달리했고, 처녀는 돌아오지 않는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물길에 몸을 던졌다. 이후 익사사고가 끊이지 않자 혼을 달래기 위해 동상을 세웠는데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우라지 강가에 서있노라면 옛날 서울로 천리 물길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떼꾼들의 아리랑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리는 듯하다. 여기에 저고리 고름 입에 물고 그들을 눈물로 배웅하던 동네 처녀의 애달픈 이별가가 오버랩된다.

아우라지에는 여랑리와 가금리를 잇는 나루터가 있다. 섶다리가 놓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없고 줄배가 오간다. 양쪽으로 이어진 줄을 당기며 건넌다. 배를 타면 뱃사공 김진갑(71)옹으로부터 아우라지 전설을 들을 수 있다. 매년 8월 아우라지뗏목축제가 열린다.

◇된장마을

아우라지에서 동해시 쪽으로 승용차로 20여분 정도 가면 돈연(59)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51)씨가 운영하는 된장마을 '메주와 첼리스트'(이하 메첼)가 나온다. 된장마을에 들어서면 앞마당에 쫙 늘어선 수천 개의 항아리가 손님을 맞는다. 도씨는 "3천280개"라며 정확한 숫자를 갖다 댔다.

100년 이상 된 항아리도 있다고 귀띔했다.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된장과 고추장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청국장 또한 강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나 코를 막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시장기만 자극할 뿐이다. 항아리 앞에 서 있는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스님과 도완녀씨, 그리고 세 아이를 조각한 가족상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이제 메첼의 상징물이 됐다.

장독대 옆 공터에는 벽이 휑하니 뚫린 너와집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아직 창틀을 해 넣지 않았다. 뻥 뚫린 창틀로 계곡 바람이 숭숭 드나든다. 바닥에는 멍석을 깔아 더 시원하다.운이 좋으면 너와집에서 도완녀씨와 차를 함께 마실 수 있다.

도완녀씨. 시골생활 15년에 아줌마가 다됐다. 몸에 좋은 간장, 된장, 그리고 선물세트가 있다고 말할 때면 영락없는 장사꾼이다. "나요, 노가다첼리스트예요. 제손이 안 움직이면 공장이 안돌아가요. 저는 6월이 되면 선탠이 끝나요"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콩 선택에서부터 가공, 발효, 판매까지 도씨의 손이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요즘 들어 웰빙 붐과 함께 먹을거리 강의, 다도, 요리 강습 등으로 더 바빠졌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연주회는 꼭꼭 갖는다고 했다. 지난 7월과 8월에 '첼로독주회'와 '음악이 있는 된장축제' 등 이벤트가 있었고, 오는 10월1일 저녁에는 피아노와 함께 '달빛음악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정선 5일장

정선에 가면 5일장을 둘러봐야 한다. 강원도 원주, 횡성, 홍천 등지에서는 제일 큰 시장이다. 정선장은 끝자리가 2와 7인 날이 장날이다. 시끄럽다. 그만큼 활기가 있다는 뜻이다. 보통 시골장은 오후가 되면 급속도로 활기를 잃는다. 그런데 정선장은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로 붐빈다.

특산물은 산나물과 약초.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나온 산나물들은 진품들이다. 산에서 직접 뜯어 말린 고사리며 취나물, 곰취, 곤드레나물이 눈길을 끈다.

농기구와 골동품 등 없는 게 없는 만물가게도 있다. 대장간에서 두드려 만든 부엌칼과 낫, 도끼, 괭이, 쇠스랑, 호미, 맷돌은 물론 겨울철 방안에 불씨를 담아놓던 화로도 보인다. 무쇠가마솥, 풍로 등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다. 구경만 하는 것은 재미없다. 한 가지라도 사야 한다. 장터 사람들과 흥정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약재며 산나물이며 구경하다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먹을거리 좌판을 지나칠 수 없다. 메밀묵, 메밀전, 올챙이국수 등 먹을거리가 많다. 옥수수 막걸리도 있다.

정선장이 서는 날 오후 4시30분부터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는 무료 창극공연이 열린다.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과 우리 장단의 흥겨움에 젖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먹을거리

정선에 가면 메밀국수와 함께 곤드레나물밥이나 올챙이국수, 콧등치기국수를 먹어봐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향긋한 곤드레 냄새가 스민 밥은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나물 고유의 쌉싸래한 기운이 느껴져 입맛을 돋운다. 곤드레나물밥 위에 갖은 양념을 한 간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입맛에 따라 고추장이나 빠글된장에 비벼 먹기도 한다.

올챙이국수엔 올챙이가 없다. 옥수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묵을 쑤어 찬물에 내릴 때 생긴 모양이 올챙이를 닮아 올챙이국수라 부른다.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입으로 처음 먹으면 간장 맛밖에 나지 않지만 천천히 곱씹다보면 어느 국수보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돋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옥수수 특유의 달작지근한 맛도 올챙이국수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한 그릇에 2천원. 양이 적다 싶으면 얼마든지 더 준다.

이밖에 국수를 한 입 가득 입에 물고 입안으로 빨아들일 때 국수 가락이 콧등을 친다하여 이름 붙여진 '콧등치기국수'도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IC- 정선(빠른 길이긴 하나 공사구간이 많아 불편하다),

중앙고속도로-원주-영동고속도로- 진부IC- 나전-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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