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길의 베트남여행기 ④

입력 2004-09-15 10:06:32

베트남에 상륙한 '한류열풍'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밤이면 한국드라마가 TV로 방영되고 있다. 식구들이 좁은 거실에 둘러 앉아 눈망울을 치켜 뜨고 화면에 열중한다.

또한 만나는 베트남 사람마다 남녀 가리지 않고 한국에서 왔노라면 반가워하고 그저 말붙이기를 좋아한다. 근본이 착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차례 베트남을 여행하는 동안 몇몇 사람을 알게 되어 친해지면서 만남과 통신으로 돈독한 인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여름방학 중에는 베트남 교수 몇몇이 국내 대학을 방문하는 틈을 이용해 나를 만나러 올 정도다.

대체로 베트남인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편이고, 미국은 나쁘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베트남인들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부분적이긴 하지만 귀동냥으로 베트남의 호기심을 조금씩 풀어보고 있다.

우리도 배낭여행 등을 통해 베트남을 이해하고 지난날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볼 겸, 삶의 질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구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등짐을 마다 않고 배낭여행을 즐기고 있다.

베트남 여행에서 느낀 점 중 하나가 베트남 여성들의 강인한 힘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가지고 남성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일 자체가 당연한 삶으로 여기고 있으며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띄게 활발해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여성 베트콩의 활약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호치민시 중심부에서 가까운 꾸치(Cu Chi)터널에 가면 여성 베트콩의 모형도 세워져 있다.

관공서나 기업, 심지어 중앙관서에도 요직을 맡고 있는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다. 시장이나 프라자 등 쇼핑몰에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의 손님을 맞는 태도는 아주 겸손하고 친절하다. 뿐만 아니라 일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계를 꾸려 나가는 책임도 대부분 여성의 몫인 것 같았다.

현지 여행 중에 속옷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아오자이'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은 즐거움 중의 하나다. 옷 맵시가 아주 연약해 보이지만 내면의 강인한 의지력이 엿보인다.

아오자이와 함께 베트남 여인의 상징은 원뿔 모양의 모자(palm hat)를 들 수 있다. 이 모자를 눌러 쓰고 막대기 양쪽에 과일을 꽉 채운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에서 작은 체구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한다.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 막대기를 어께에 메고 일어서려고 해보았으나 힘이 모자라 주저앉아 버렸다.

전 계명대 교수·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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