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노사 협상도 파업하나

입력 2004-09-10 13:50:08

"대구지하철 파업은 언제 끝나나."

요즘들어 다른 곳에 사는 지인(知人)을 만날 때면 꼭 받는 물음이다.

대구지하철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화의 모두(冒頭)가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대구지하철 참사가 났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물음을 듣는 속마음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지하철 참사 때는 애도와 안타까움, 살아있는 이들의 죄송스러움이 서로의 대화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사가 난지 얼마나 됐다고...'하는 비아냥이 물음의 이면에 깔린 것 같아 마음이 어쩐지 편치 않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을 경우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파업을 할 수 있다.

대구지하철 노조의 파업은 분명히 합법적인 파업이다.

때문에 잘잘못을 따질 사안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일반 시민은 대구지하철 노조의 파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만큼 노조의 파업 때문에 다른 도시민들 앞에서 공연히 움츠러들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음은 지난해의 참사 때문에, 대구지하철에 대해 대구시민들이라면 누구나 갖는 심적 부담에서다.

게다가 다른 대도시의 지하철 파업은 조기에 풀렸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기다리기도 지쳤다

대구지하철 파업은 10일로 52일째 이어지고 있다.

노사도 지치고, 이제나 저제나 하며 해결을 기다리던 시민들도 지쳤다.

그런데도 해결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대구지하철 문제가 이처럼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노사의 자세, 그 중에서도 특히 사 측의 입장이 예전의 협상 때보다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노사협상 때는 사실 사 측이 상당 부분 양보를 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 측이 예전과 달리 노조의 요구에 선뜻 물러서지 않고 강경한 자세다.

그러다 보니 주 40시간 근무제에 따른 인력 충원, 조직개편안 등 기존의 핵심 쟁점에 대한 노사의 시각이 좁혀지지 않고 무노동 무임금, 조합원 징계 문제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 측의 강경한 자세는 이대로 가면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어도 만성적인 적자 구조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것이란 경영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큰 탓이다.

게다가 심각한 불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서울지하철, LG칼텍스정유 등에서 보듯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흐르는 것도 대구지하철공사의 강경한 입장에 한 몫을 한 듯하다.

지하철 안전문제도 마찬가지다.

노조는 공사 측의 안을 적용하면 지하철 안전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시민들은 지하철 안전과 함께 경영 개선을 이루려는 것이란 사 측의 주장에 더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지하철 참사가 난지 얼마나 됐다고 파업하나'라는 시민들의 부정적인 정서도 적지 않게 들어있다.

문제는 대구지하철 파업이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고, 이대로 간다면 한달이든 두달이든 계속 끌 태세라는 점이다.

노사간의 협상은 '밀고 당기기'를 통해 서로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형국을 보면 타협과 양보를 통해 공통분모를 적당한 선에서 찾는 일이 물건너 가고,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 '항복'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듯한 양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지하철노조도, 회사 측도, 서로가 물러서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렸다

노조는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무노동 무임금 적용으로 급여를 못받는 희생까지 치르고 있어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또 공사 측도 더 이상의 수정안은 없으며 무노동 무임금 등 원칙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끊임없이 공언해온 만큼 역시 마찬가지다.

대화.타협외 다른 방안 있나

그러나 마냥 시간만 죽인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대화와 타협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두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빵 반쪽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옛 속담처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솔로몬의 재판처럼 '반쪽 아이는 아예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며 'all or nothing'을 쫓는 것이다.

노사가 현재 내놓은 안이 도저히 더 이상 양보할 수 없고, 양보해서도 안되는 절대 가치라면 'all or nothing'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빵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노력하는 것이 순리이다.

대구지하철 노사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떤 입장인가. 'all or nothing'인가, 아니면 '빵 반쪽'이라도 찾으려는 것인가.

'all or nothing'은 노사 모두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대화를 통해 '빵'을 나누려는 노력이라도 보여라. 노사도 지하철 파업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잘 알지 않나.

그리고 노사는 더 이상 패를 감추지 말고 협상 테이블에 모두 솔직히 내놓아라. 이제 또다시 패를 감춘채 서로 밀고 당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났다.

노사는 파업때문에 지치고 성난 시민들이 보이지 않나.

허용섭(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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