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서­-문명과 야만 사이

입력 2004-09-10 09:54:02

지독했던 지난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강의가 시작되어 캠퍼스에는 학생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대학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밤늦도록 20세기 영국의 작가 조셉 콘라드의 이라는 소설을 뒤적이고 있던 중에 러시아 초등학교에서의 인질극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구 3만 명이 조금 넘는 평화로운 소도시였던 러시아 남부 베슬란은 하루아침에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물대신 오줌을 받아 마셔야 했다고 울먹이는 어린이,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누어있는 아이들, 갑자기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 죄 없고 순진무구한 아이들과 부모들은 자신들이 왜 이 같은 불행과 고통에 처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죽음의 상황 속에서 허둥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에서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당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저렇게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종족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하에 인간의 위선과 증오와 타락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콘라드의 은 19세기말 '암흑의 대륙'이라고 알려진 아프리카 콩고에 문명을 전파한다는 미명하에 들어간 주인공 커츠의 어처구니없는 인간타락의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커츠는 문명사회에서 교육도 받고 교양인의 품성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타락해 원주민에 대한 처참한 착취와 학살을 행한다.

작가 콘라드는 '인간 양심의 역사를 더럽힌 가장 사악한 약탈의 현장'을 목격했다고 훗날 한 에세이에서 기록했지만, 콩고에서의 커츠의 행위가 문명을 위한 것인지 야만의 그것인지 알 수 없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이웃'과 '경찰'의 감시가 없는 곳에 놓이게 되면 우리 모두가 커츠와 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야만적 만행이 자행되고 있고, '이데올로기'와 '종교'와 '종족'의 이름으로 귀중한 생명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허상문(영남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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