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동 풍경-(6)판사와 변호사

입력 2004-09-08 09:27:01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의 관계는 어떠할 것 같습니까?

얼핏 보면 둘다 같은 법조인인데 비슷한 발언권을 갖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재판 지휘권을 가진 판사가 너무나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년전의 에피소드입니다.

한 젊은 변호사가 재판 중 판사에게 "소송당사자의 돈을 받고 이것 밖에 못하느냐"는 투로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이 변호사는 분을 삭이지 못해 나이 든 변호사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나이 든 변호사가 빙긋이 웃으며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판사가 변호사에게 사건기록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했답니다.

20년도 넘은 옛날 얘기 입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항의를 했다 눈 밖에 나게 됐습니다.

그는 한동안 재판 중에는 화장실에 갈 엄두도 못냈다고 합니다.

판사가 그 변호사의 사건에 대해서는 순서를 계속 뒤로 미루다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바로 재판을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니 기자가 법조계 출입을 한 지 꽤 됐지만, 변호사가 판사의 말을 맞받아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설령 판사의 말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들이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이지요.

이런 얘기가 나올 때면 타계한 고 이상희(1934~1997)변호사가 화제의 주인공으로 오르내리곤 합니다.

"그 만큼 '전투적인' 변호사도 없을 겁니다.

큰 목소리로 판사에게 대드는 것은 물론이고, 거짓말하는 증인에게 꾸중하고 삿대질하는 것도 예사였지요."

그는 경북대 사대부속고교 재학시절 규율부장 경력에 개업 뒤 태권도·킥복싱협회 지부장을 역임한 것에서 보듯 성격이 터프했다고 합니다.

맘에 들지 않으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죄 많은 피고인에 대해서도 무조건 무죄 취지로 변론을 했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지요.

1970, 80년대만 해도 대구에 판사가 50명 안팎, 변호사가 60~70명에 불과한 탓에 지연, 학연이 얽혀 있어 다소 도에 넘치는 행동을 해도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를 놓고 상당수 변호사들은 재판부의 관행을 고치는데 기여를 했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법 논리보다는 감정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내리곤 하지요.

어쨌든 요즘의 합리적인 재판 분위기에 비춰볼때 그 같은 변호사는 앞으로도 없을 듯 합니다.

한 고참 판사의 말처럼 "요즘에는 그처럼 다이내믹한 변호사가 없어 법정에 재미가 없다"고 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일까요?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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